밸런스 게임이라는 게 있다.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건데 대체로 희한한 내용들을 대결 시킨다. 1년 동안 집안에 갇혀 살고 1억 벌기 vs 1년 동안 집에 못 들어오고 1억 벌기. 황당한 내용들이지만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선택하게 된다. 그래도 집 밖에 돌아다니는 게 낫지 않나? 밖에도 숙소는 있으니까, 노숙만 안하면 되는 거지. 좋아 1년 간 밖에서 살고 1억 벌자- 같은 허무맹랑한 결론.
내가 만들고 싶은 밸런스 게임은 스마트폰 8시간 보기 vs 책 8시간 읽기이다. 압도적으로 8시간 동안 스마트폰을 보겠다는 사람이 많을 거 같긴 하지만 책 8시간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을 거다. 책을 선택한 사람들을 모아서 조용한 곳에서 북파티를 열고 싶다. 파티를 하는 동안 대화는 할 수 없고 8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 알아서 집으로 가면 된다. 생각해보니 이미 도서관이라는 멋진 북 파티 장소가 존재하니까 굳이 내가 파티를 열 필요는 없겠다.
두 개의 선택지 중에 내가 선택할 것도 책 8시간 읽기이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핸드폰 사용 시간을 알려주는 '스크린 타임'이 내가 처한 현실을 말해준다. 오늘 하루 동안 스마트폰을 본 시간은 4시간 남짓이고 밀리의 서재 같은 정보 및 도서 앱은 48분 정도 활용했다. 나머지는 카카오톡, 트위터 같은 앱들이다. 자잘한 앱들 사용 시간을 합치니 쉽게 몇 시간이 되었다.
오늘은 휴대폰을 그렇게 많이 쳐다보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집에서 내내 책과 신문을 읽었고 딴짓을 거의 안했다. 결과적으로 느낌적인 느낌이 그랬던 거였다. 자신있게 스크린 타임을 확인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결과가 있었다. 무의식 중에 사각형 기계를 쳐다보면서 날려먹은 시간이 이렇게 많았다. 8시간 스마트폰 보기는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쉽게 달성할 수 있는 너무 쉬운 영역이다.
8시간 책 읽기는 어떠한가. 무의식 중에 책을 펴는 걸로는 부족하다. 주말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책을 붙잡고 있으면 얼추 7~8시간 정도 책을 읽을 수 있다. 눈 뜨자마자 오전 중에 한 권, 밥 먹고 오후에 한 권, 저녁 먹기 전에 좀 읽고, 잠들기 전까지 읽는 걸로 쳐서 2시간씩 4번으로 쪼개면 가능하다. 거의 수험생 수준으로 책을 읽는 거다. 독서가 직업인 사람이 아니라면 쉽지 않은 일이다. 가끔 주말에 이런 식으로 하루 종일 책을 읽을 때가 있지만, 굳이 머리를 써가며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두 문항을 합쳐서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는 건 어떨까. 무의식적으로 들여다 보는 기계에 책을 접목하면 밸런스 게임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된다. 1년에 겨우 책 한 두 권 읽던 친구가 '밀리의 서재'를 신청하고 한 달 동안 10권의 책을 읽었다고 했다. 출퇴근 시간마다 스마트폰 보는 게 습관이었는데 이북 앱을 깔아주니까 자연스럽게 허비하던 시간이 독서 시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 독서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데 도움을 준 것도 스마트폰이다. 나름 책을 사랑해서 가방에 책 한 두 권씩 챙겨 다니는 게 일상이었다. 짬이 나면 꺼내서 읽고 가방에 넣고. 이런 과정들이 번거롭다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책 때문에 가방이 무거운 것도 가방 각이 잡혀서 좋았다. 그러다가 이북 리더기를 알게 됐다. 조그마한 기계 덕분에 가방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몇 십권의 책을 들고 다닐 수 있었지만, 여전히 물건 하나를 따로 챙겨야했다. 언젠가부터 충전하고 챙기는 과정들이 귀찮아져서 이북 리더기는 서랍 깊숙한 곳에 들어갔다.
핸드폰으로 책을 읽은 건 우연이었다. 회사에서 강제로 연수 들으라고 시킨 게 있어서 퇴근 후에 외진 곳까지 갔다. 시골 길 끝에 있는 연수원에 도착하자 비가 쏟아졌다. 습기로 눅눅한 강의실에서 강사가 입을 염과 동시에 잠이 쏟아졌다. 거기까지 간 시간이 아까워서 조는 것보단 딴짓을 하고 싶었다. 책을 읽고 싶은데 당연히 책을 꺼낼 수는 없고, 이북 리더기도 사이즈가 커서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때 책상 위에 놓여있는 스마트폰이 보였다.
연수가 진행된 3시간 동안 앉은 자리에서 책 한 권 반을 읽었다. 어찌나 집중이 잘되던지 연수가 계속 진행되면 끝없이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쉽게도 약속된 시간에 강의가 끝났다. 그날 수업이 무슨 내용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에 스마트폰 독서의 매력에 빠졌다. 그때부터 점점 종이책을 덜 읽게 되었고 지금은 전자책이 없는 책들만 종이책으로 읽는다. 스마트폰으로 책을 읽으면서 시시때때로 무의식적으로 독서를 하게 되었다.
스마트폰을 8시간 보는 게 어렵지 않은 일이라면 스마트폰으로 책을 8시간 읽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다. 신년 계획에 독서가 들어가 있다면 스마트폰을 활용해보자. 다음엔 '스마트폰으로 책 8시간 읽기'로 밸런스 게임을 다시 만들어야 겠다. 대결 문항으로는 극악의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는 이북 리더기를 이용해서 인터넷 서핑 8시간 하기 정도가 좋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