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반려인이 1년에 한 번씩 하는 행사가 있다. 바로 ‘재테크 캠프’다. 함께 살기 전에는 우리 집에서 모여 2박 3일 숙박을 했기에 '캠프'라고 이름을 붙였다. 72시간 동안 주식을 비롯한 각종 투자 책을 읽고 한 해 동안의 투자 전략을 세웠다. 한마디로 모여서 빡세게 공부하는 날이었다. 새해가 시작될 무렵에 한 번씩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지면 1년을 열심히 살 의지가 생겨서 좋았다.
올해에는 반려인과 같이 살고 있는데도 굳이 캠프라고 이름을 붙인 건 이번엔 2박 3일이 아니라 30일로 스케일이 커졌기 때문이다. 새해 새로운 습관을 잡는 겸, 주식 대세 상승장 이후의 전략을 세우는 겸, 겸사겸사 밀도 있게 공부하는 시간의 필요성을 느끼던 차에 자연스럽게 재테크 캠프를 열자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둘 다 공부에 대한 의지가 있어서 이런 건 죽이 잘 맞는다.
캠프 기간 동안 하고 있는 일들은 1) 경제 일간지 읽기 2) 산업리포트 읽기 3) 재테크 책 읽고 대화 나누기이다. 각종 강의를 보는 것도 계획에 들어가 있다. 캠프가 진행되는 시간에는 대체로 뭔가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평소에는 아침과 저녁 시간을 이용한다. 학교처럼 시간표를 짜뒀다. 물론 완벽하게 시간표대로 움직이진 않는다. 오늘로 4일 차를 맞이한 캠프는 아직까지는 위에 적어놓은 것들을 매일 실천하며 잘 굴러가고 있다.
올해부터는 신문 읽기 습관을 들이겠다고 선언했다. 고맙게도 반려인이 적극 동참해줘서 눈 뜨면 커피를 내리고 신문부터 찾아 읽는 모범을 보여준다. 매일 여러 편의 기사를 읽고 재테크 일기를 쓰는 반려인과 다르게, 나는 아직 신문과 거리가 멀다. 이번에 종이 신문을 구독하면서 여기서 투자 정보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읽는다. 생각보다 읽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필요한 기사를 취사선택하는 연습의 필요성을 느낀다.
산업리포트는 한경 컨센서스에 들어가서 읽는다. 하루에 리포트가 몇십 개씩 올라오는데 관심 가는 분야부터 먼저 읽는다. 최근에 핫하다 못해 주가가 지구를 뚫고 나갈 거 같은 자동차나 반도체 분야는 챙겨서 읽고 나머지 중에 골라서 읽는 식이다. 같은 분야라도 리포트를 작성하는 애널리스트에 따라 보는 관점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 분야에 여러 개를 보는 것이 좋다. 산업 리포트를 읽다 보면 호황 업종을 예측할 수 있는 힘이 길러진다고 하니 꾸준함이 필요하다.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역시 책 읽기이다. 어디선가 추천을 받은 책, 읽고 싶었던 책, 고전으로 불리는 책들을 쌓아놓고 한 권 씩 꺼내서 읽는다. 신문, 리포트, 책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걸 꼽으라면 책이 아닐까 싶다. 책은 저자부터 편집자까지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검증된 내용을 담고 있고, 정보를 재해석해 지식으로 정리해둔 경우가 많다. 신문 기사가 날 것 그대로의 투자 정보라면, 책은 따라 하는 게 가능한 수준의 투자 기법과 투자처가 나와있다. (물론 책 한 권 읽고 다짜고짜 따라서 투자하면 안 된다.) 읽은 책이 누적되다 보면 언젠가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않을까 기대한다.
한국의 적막한 도서관과 다르게 유대인들의 도서관은 늘 시끌벅적하다고 한다. 공부하다가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옆자리 친구와 바로 토론을 하고,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어도 대화를 시작한다. 이야기 속에서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해결된다. 내가 잘 아는 분야는 남에게 가르쳐 주면서 배울 수 있고, 모르면 들으면서 배울 수 있다.
우리의 재테크 캠프가 유대인의 도서관과 비슷하다고 느낀다. 공부하다가 괜찮은 아이디어를 발견하면 바로 대화를 나눠서 확장시킨다. 그게 단순한 기삿거리든, 책에서 발견한 심오한 이야기든 상관없다. 논의의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갑작스럽게 말을 걸면 열공하고 있는 사람의 집중력을 깨는 것 같지만 아니다. 나에게 중요해 보이는 내용이라면 상대에게도 중요할 거라 믿으며 익스큐즈 하고 정적을 깬다. 기억하고 싶은 내용을 언급함으로써 단기 기억이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가끔은 대화에서 꽤나 굉장한 결론을 얻을 때가 있는 반면에 대화가 공중분해돼서 끝날 때도 있다. 어떻게 끝나든 이런 담소들이 몹시 재밌다. 재밌지 않으면 안 해도 먹고사는데 지장이 없는 공부를 몇 년째 지속하기는 어려웠을 거다. 잡답과 논의 사이 어딘가에 머무는 대화는 삭막한 재테크 공부를 할만하게 만들어 준다. 말을 건네며 잠시 잠깐 환기를 시키고 나면 집중이 더 잘 되기도 한다.
혼자였다면 평생 이렇게 공부하면서 살겠다는 생각을 못했을 거다. 내가 하루쯤은 공부를 건너뛰고 싶은 날에도 눈 뜨자마자 책상에 앉아있는 반려인을 보면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된다. 주위에 누군가 있을 때 공부가 잘되는 사람이라 같이 공부하는 러닝 메이트의 존재가 감사하고 든든하다. 남은 26일의 재테크 캠프도 잘 보내서 투자 농사의 씨앗을 얻어야겠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