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토끼와 핫도그 Jan 12. 2021

매일 글을 쓰는 데 돈을 걸었다

손실 회피 욕구로 습관 만들기

© neonbrand, 출처 Unsplash



이십대 중반 무렵의 일이다. 밤새 술 마시고 해가 뜨는 걸 보고서야 집에 들어가는 길이었다.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구토감이 밀려와서 걷기가 어려웠다. 다른 날에도 술 마시면 취하는 건 비슷했는데 그날은 뭔가 달랐다. 마음 한 편에 더이상 이렇게 살지 말자는 생각이 가득찼다. '그래 결심했어. 술을 끊는 거야.' 이전에도 열 번 정도 금주 선언을 했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는 반드시 실패할 터였다.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방법이 필요했다.


변화와 도전에 보상이나 벌칙이 있으면 도움이 되는 법. 비슷한 처지의 알콜에 빠져사는 친구를 찾아서 술 끊기 내기를 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각자 10만원을 참가비로 낸다. 3개월 동안 술을 안마신다. 그 사이에 누군가 술을 마신다면 10만원은 자동적으로 상대방에게 넘어간다. 내기를 심판봐 줄 제 3의 친구에게 10만원 씩을 송금한 순간부터 금주가 시작됐다.


학생에게 10만원은 작은 돈이 아니었다. 술이 주는 쾌락 vs 10만원 손실 고통의 대결이었다. 결과적으로 내기에서 내가 이겼다. 절대 돈을 잃을 수 없다는 강력한 동기에 술 마실 생각이 없기도 했지만, 친구가 먼저 술을 마셔주는 덕분에 한 달 반이 지난 시점에서 내기가 끝났다. 번 돈 10만원으로 친구와 만나서 사이 좋게 술을 먹었다는 후일담이 남았다.


그 뒤로 돈을 거는 내기는 거의 해본적이 없었으니 오래간만이다. 이번에는 매일 10줄 이상의 글을 쓰는 데 돈을 걸었다. 친구와 함께하는 건 아니고, 돈을 걸면 습관 만들기를 도와준다는 '챌린저스'라는 어플의 힘을 빌렸다. 그곳에는 나처럼 습관을 만들고 싶은데 혼자서는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있었다. 어플을 자세히 살펴보니 도전 분야도 글쓰기 이외에 홈트 운동하기, 하루 1시간 공부, 독서처럼 무궁무진했다.


글쓰기 도전은 자신이 쓴 글을 인증샷 찍어서 당일 밤 12시까지 올리면 미션 완료된다. 한 주에 5번씩 2주 동안 10번의 글을 올리면 환급 받을 수 있다. 글을 열 번 다 올리면 보증금 전액과 1% 남짓한 상금을 받을 수 있고, 성공률 85%까지는 보증금만 돌려 받는다. 열 번 중 1번까지는 빼먹어도 되지만 그 이후부턴 벌금을 내야 한다. 인증은 글의 내용을 적당히 가려서 올리는 분들도 있고 다 공개하는 분들도 있다. 얼굴을 모르는 분들이지만 글을 공유하는 사이라 혼자 내적 친밀감을 쌓는 중이다.


 

내가 매일 글쓰기에 건 돈은 2만원이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클 수도 있는 돈이다. 아직은 2일차라 그런지 손실회피 본능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아침에 미리 글을 쓰면 베스트지만 그렇게까지 부지런하지는 못하다. 밤이 다 되어서야 챌린저스를 떠올리며 글을 쓰기 시작한다. 보통 저녁에는 책을 읽다가 잠들었는데 뭐라도 쓰다가 잠들게 되었으니 일상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자리에 앉아서 첫 줄을 시작하면 어찌됐든 한 편 분량의 글을 끼적인다. 계획했던 한 바닥을 다 못쓰더라도 초고 정도는 완성할 수 있다. 문제는 누구나 그렇듯 첫 줄 쓰는 게 너무나 어렵다. 첫 줄을 구상하는 게 어렵다기보다 글의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 자체가 부담스럽다. 습관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니 글쓰기는 아직 습관 언저리에도 못갔다.


매일 쓰는 습관이 필요한 나에게는 거창하게 매일 글 한 편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보다는 10줄이 적당하다. 지금 쓰는 이 글도 10줄에서 시작해서 한바닥을 향해 가고 있다. 산의 초입길에 들어서면 그때부턴 정상을 향해 쭉쭉 올라가는 것처럼, 글쓰기도 초입을 넘어서면 어디론가 도착할 수 있다. 비록 그게 내가 계획했던 곳인지, 예상치 못했던 곳인지는 글이 끝나봐야 알 수 있다.


글쓰기는 2019년부터 습관으로 만들고 싶어서 도전했으나 될듯 말듯 하면서 실패했었다. 부단히 실패했어도 아예 놔버린 건 아니어서 간간히 써왔다. 브런치를 시작한 것도 글쓰기를 놓지 않으려는 몸부림 중 하나였다. 가느다랗게 명맥이 이어온 덕분에 매일 쓰려는 시도를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돈'이라는 강제성이 생겼으니 이번에는 다른 결과가 있기를.



written by 토핫 (핫도그)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나 이제 깍두기 담가먹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