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작은 재테크 습관의 힘
어렸을 적 썼던 일기에는 날씨, 오늘 있었던 일, 간단한 소감(?)이 들어갔다. 사실 일기 쓰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강제하는 사항이라 어린 마음에 더 귀찮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방학이 끝날 즈음 숙제로 나왔던 일기를 몰아치듯 해치웠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내가 나이 먹고 자발적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주제는 바로 '재테크 일기'. 처음 쓰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네이버 같은 곳에 검색해봐도 딱히 '재테크 일기'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글을 올리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래? 그렇다면 내가 시작해보지!라고 마음먹고 재테크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일기에 '날씨' 항목이 항상 있다면, 내 재테크 일기에는 날씨 대신 그날의 주가지수와 환율을 기록하기로 했다. 금리도 기록하는데, 자주 변동사항이 없어서 변동이 생길 때마다 기록하고 있다. 나는 국내 주식과 미국 주식에 투자하고 있으니 주가지수에는 코스피와 나스닥 지수를 넣었다. 어릴 적 일기에 오늘 있었던 일을 썼었던 것처럼 내 재테크 일기에도 오늘 있었던 일을 쓰기 시작했다. 대신 카테고리를 나눠서 국내 증시, 미국 증시, 부동산, 공모주 청약, 오늘의 소비 등등으로 그날그날 투자한 내용을 적기로 했다. 매일 소비한 내용을 적는 건 가계부와 느낌이 비슷해서 내 소비습관을 점검하는데도 유용하다.
투자를 시작할 때 어떤 분야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복기'라고 했다. 재테크 일기를 쓰면서 이 '복기'의 과정이 자연스러워졌다. 내가 어떤 ETF를 매수할 때 왜 그랬는지, 지나고 나서 그랬으면 안 된다는 걸 한번 더 확실히 배우기도 한다. 어떤 근거로 이런 투자의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를 한눈에 보기도 편하다. 특히 주가지수와 환율을 꾸준히 보다 보니 이제 어느 정도 나름의 해석이 가능해졌다. 그날그날 ETF, 주식의 수익률을 기록하니 내 투자자산들의 추이를 지켜보기에도 좋다. 그날의 중요한 경제기사들도 함께 기록하면서 왜 이런 식으로 지수, 환율이 변동하고 있는지 스스로 이유를 찾아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재테크 일기를 쓴 지 한 달 반 정도가 지났는데, 놀라운 것은 처음부터 오늘이 될 때까지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기를 써왔다는 거다. 이것이 바로 자발성의 힘인가! 어렸을 때 강제로 시켰을 때는 그렇게 쓰기 싫더니, 내가 하고 싶어서 쓰니 매일 자기 전에 하나씩 쓰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아 졌다.
첫 재테크 일기는 5월 15일이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토끼의 재테크 생존기'가 되기를 바라며 시작했는데, 한 달이 지난 지금 보니 아직까지는 비교적 잘 살아남고 있는 것 같다.
재테크 일기를 작성하는 시간은 대체로 하루의 끝, 10시 30분 정도다. 사실 이 시간에 주로 작성하는 이유는 미국 ETF에 투자하고 있어서다. 미국 장은 시차로 인해 밤 10시 30분에 개장한다. 그때 내 투자자산의 변동이 커서, 기왕이면 10시 30분이 넘는 시간대에 재테크 일기를 꾸준히 작성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자기 전 하루를 돌아보는 의미도 되면서 그날 공부한 재테크 내용을 정리하는 시간도 된다.
매일 재테크 일기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무럭무럭 늘어나는 내 투자자산들을 하나하나 신경 쓰는 게 어려웠다. 코로나 19로 주가지수가 바닥을 찍을 때쯤, ELS 상품에 공격적으로 가입을 했다. 그 덕에 7개가 넘는 ELS 상품에 가입되어 있는데, 이게 웬걸! 1차 조기 상환일이 각자 언젠지를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1일 1 재테크 일기 + 재테크 달력이라는 걸 만들어봤다. 재테크 달력은 이렇게 생겼다.
재테크 달력을 기록하다 깨달은 것, 이미 1차 상환이 된 ELS들이 있었다(!!!!). 이렇게 기록해놓지 않으면 놓치고 지나가는 것들이 많다는 걸 또 느꼈다. 앞으로도 재테크 일기와 달력은 꾸준히 써나갈 계획이다. 내 투자자산을 계획적으로 관리해나가는데 큰 도움을 주는 방식들이다.
블로그에 꾸준히 기록해나가다 보니 장점이 있다. 내가 그때 왜 그랬지?, 혹은 내가 그때 뭐했지? 관련 질문이 떠오를 때 해당 날짜의 재테크 일기를 클릭해보면 큰 도움이 된다. 하루 종일 공부했던 내용을 한번 더 글로써 정리하면서 복습되는 효과도 있다. 직장인으로서 매일 한 개의 글을 쓴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에는 엄청나게 느린 노트북을 가지고 한 달에 글 하나 정도씩만 블로그에 적었다. 그런데 함께 재테크 공부를 하는 K가 매일매일 블로그에 글을 하나씩 쓰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고 나도 함께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새 노트북을 구입했으며, 그때 이후로 빨라진 노트북과 함께 매일 하루의 재테크를 기록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사실 재테크 일기에 정해진 형식 따위는 없다. 내가 부동산을 주로 한다면 부동산 관련 내용이 일기의 주가 될 수도 있고, 예적금을 중심으로 한다면 고금리의 예적금 납입 현황이 될 수도 있다. 짠 테크를 열심히 하는 중이라면 내가 어떻게 돈을 아끼고 있는지를 적어봐도 좋다.
매일 꾸준히 무언가를 한다면 뭐가 돼도 된다는 말이 있다. 작년부터 뺀질나게 재테크 책을 읽고 공부를 해오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소액이지만 주식으로 수익 실현도 해보고, 다양한 투자상품에 투자하며, 새로운 투자처에 도전하고 있다. 이 모든 게 재테크 일기로 쌓인 내공의 힘 덕분이다! 어릴 적 일기 쓰기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요즘 쓰는 재테크 일기는 재미가 있다. 역시 누가 시켜서 하는 것보다는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최고다.
written by 토핫(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