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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와 핫도그 Jun 24. 2020

<미라클 일주일 지갑>이 만든 소비 습관 혁명

나를 워킹 푸어에서 구해준 고마운 책 1

'띵동'. 월급이 들어왔다는 은행 앱의 알람이 떴다. 이런 알람은 슬쩍 봐도 몹시 신난다. 월급에 중독돼서 일한다다는 말이 딱이다. 하루 종일 업무가 바빠서 잔고 확인을 제대로 못하다가, 저녁을 먹으며 문득 아침의 알림이 떠올랐다. 뱅킹에 접속해서 보니 잔고는 0원. 눈을 비비고 봐도 0원이었다. 카드 값이 백 몇십 만원, 대출 이자가 몇십 만원, 청약 통장이 십만원, 각종 보혐료와 기타 등등이 빠져나가고 0원이 되어 있었다. 



월급이 들어오면 카드값을 내고, 다시 카드로 생활한지 몇 달이나 되었을까.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비를 메꾸기 직전의 간당간당한 날들이 지속됐다. 저금을 안 한지 2년 정도 지났지만 가계부에서 마이너스는 안 찍히니 괜찮다고 위안 삼던 중이었다. 정말 마이너스가 찍히게 생기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말로만 듣던 워킹푸어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직장인 5년 차에 들어선 시점이었다. 과소비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명품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며, 차 살 때 허세 부리지 않았는데 가계부가 왜 이렇게 됐을까 이해하기 힘들었다. 주변에서 남들은 1억을 모았느니, 아파트를 계약했느니 말들이 많았다. 내가 모은 돈은 취직 초반에 열심히 넣던 전세 대출 상환금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거치식으로 바꾸면서 이자만 내고 있었다. 월급이 한달이라도 빠지면 신용불량자가 예약되어있는 미래라니. 급 우울함이 밀려왔다. 


그 뒤에 S와 재테크 스터디하며 읽은 책들에선 통장을 쪼개라, 가계부를 꼼꼼하게 써라, 지출하기 전에 자동 저축하라라는 조언들이 적혀 있었다. 이런 말들이 내 전체적인 재정 상황을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개선하는데 도움을 줬지만 뭔가 부족했다. 몇 십 년간 사고 싶은 건 당일에 주문하는 소비형 인간으로 살던 습관을 바꾸기엔 1프로 부족했다. 소비를 줄이지 않은 상태에선 통장 잔고에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웠다.



소비 요정에서 탈출하게 만들어 준 <미라클 일주일 지갑>



소비 습관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미라클 일주일 지갑>이란 책이었다. 책 내용은 심플하다. 일주일 치 예산을 정해서 현금으로 뽑고 그 안에서만 돈을 쓴다. 돈이 남으면 다음 주로 이월해서 사용한다. 계속해서 예산이 남는 행복한 상황이 벌어질 때는 일주일 예산을 줄인다. S와 의기투합해서 바로 실천에 옮겼다. 각자 7일 동안 사용할 금액을 정하고 atm에 가서 현금을 뽑았다. 중, 고등학교 때 이후로 현금을 사용한 적이 거의 없는데 게임하는 느낌이라 재밌었다.


처음 세운 예산은 하루 2만원. 한달에 60~62만원 정도였다. 순수 용돈만 넣은 건 아니고 생필품을 사는 비용도 넣었다. 미라클 일주일 지갑의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현금을 사용해야 하니 인터넷 쇼핑을 할 수 없었다. 인터넷에서만 파는 물품은 신용카드로 사고 현금을 입금하기로 정했다. 이 과정이 번거로워서 온라인 쇼핑 비율이 현저히 줄었다. 매일 택배가 쌓이던 일상에서 물건 사기 전에 정말 필요한지 따지고, 또 따지게 되었다. 덕분에 집에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알게 되었고, 샀던 걸 또 사서 여러 개 쌓아놓는 일이 사라졌다.


또 하나 좋았던 건, 현금이 줄어드는 물리적 감각이 느껴지자 돈을 쓰기 싫어졌다. 이건 나에게 대단히 중요한 변화였다. 이전까지는 돈을 쓰기 싫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 돈 쓰는데 심리적 저항이 없으니 통장이 텅장이 될 때까지 물 쓰듯 썼다. 현금은 사용하면 부피가 줄어드는 게 보였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소비=즐거움'이란 공식에서 '소비=그다지 즐겁지 않음'이 된 것이다. 집에 오기 전 카페에 들러서 음료를 한 잔씩 사거나, 편의점에서 불필요하게 사던 자잘한 소비들이 사라졌다. 


나중에 다른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결제 과정이 쉬우면 쉬울수록, 후불로 결제할수록 소비하는 금액이 늘어난다. OO페이, OO결제처럼 지문이나, 6자리 숫자를 누르면 물건을 살 수 있는 시스템은 이전보다 우리의 지갑을 더 쉽게 연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핸드폰 액정과 모니터 너머에는 소비 심리 전문가 수십, 수백명이 앉아서 우리 지갑을 노린다는 사실이다. 잘 짜여진 소비 습관에 저항하기 위해서 결제 과정을 고통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현금을 쓰면 브레이크를 걸 수 있다.



하루에 2만원이던 예산은 나중에 15000원까지 줄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줄어든 예산 범위 내에서 잘 살았다. 그러다가 소비 습관이 완전히 바뀐 뒤부터는 S와 상의해서 미라클 일주일 지갑을 중단했다. 카드를 써도 현금처럼 소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든 다음이었다. 잔고가 0원이던 통장에서 한달 월급의 절반 정도를 저금하고 투자하게 된 시점이기도 했다. 


워킹푸어를 목전에 뒀을 때와 현재의 소비 패턴을 비교하면 다시 태어난 수준이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무언가를 습관처럼 사던 사람에서 물건 하나 사기 전에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덜 소비하면서 삶의 질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올라갔다. 냉장고에 썩어서 버리는 식재료가 없어졌고, 집 구석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여가던 택배 물건들이 사라지자 집이 쾌적해졌다. 소비 습관 하나 바꿨을 뿐인데 모든 게 달라졌다. 


written by 토핫(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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