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의 내 속도대로 가는 재테크
"1년 만에 부자 되기", "몇 개월 만에 얼마 벌기" 등 유달리 재테크 책에는 빨리! 지금 당장! 돈을 벌게 해 준다는 책들이 많다. 아무래도 지금 당장 돈을 벌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이 크기 때문일 거다. 재테크를 달리기로 비유하자면 나보다 빨리 달리고, 나를 제치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조급함이 생겨나기 십상이다. 결혼을 해서 서울에 집을 마련한 친구, 태초에 출발선이 달라서 한참 앞서가는 사람, 나보다 월급을 두배 더 받는 친구들 등등. 주변을 둘러보면 왠지 다들 나보다 부자인 것 같고, 많이 버는 것 같다는 조급함을 숨기기 어렵다. 사람이라 더 그렇다.
조급하다 보면 내가 이루고 있는 작은 성취들을 놓치기 마련이다. 재테크에 아예 관심이 없던 예전의 '나'가 지금의 '나'를 보면 이렇게 말할 거다. "네가 저축을 이렇게 많이 한다고?" "네가 여행을 이렇게 줄였다고??" "네가 술 먹고 택시를 안 탄다고?" 칭찬해줄 거리가 한가득인데 어느샌가 정신없는 레이스 속 달려가는 남들과 비교하다 보면 내가 이루고 있는 성취는 작아지고, 남들의 성취가 더 커 보이기 마련이다.
처음 재테크 공부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산의 숫자들을 보고 있자면 재밌었다. 재테크 시작할 때에는 블로그 글을 써서 하루에 500원만 벌 수 있어도 너무 재밌었다. 주식을 시작했는데 숫자가 마이너스가 아니라 플러스면 플러스여서 행복했다. 작은 성취들에 까르르 웃을 수 있는 출발이었다. 재테크 시작 후 1년 정도 지난 지금, 자산이 불어나는 속도는 정말 빨라졌고 전에 비해 아는 것도 많아졌지만 전만큼 작은 변화에 행복해하지 않는 나를 발견한다. 성취에 대한 역치가 높아진 거다. 내 작은 성취에 감탄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큰 성취를 부러워하는 나를 발견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처음 재테크 공부를 시작한 뒤 작은 슬럼프가 찾아온 느낌이다. 매일 읽던 책들도 조금 손을 놨고, 열렬히 듣던 강의들도 쉬어가고 있다. 물론 놓지 않고 있는 습관들도 있지만, 재테크를 대하는 나의 마음이 조금 달라진 것 같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지난 2~3월을 생각해보면 재테크 공부를 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새로운 걸 배워나가는 즐거움에 취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했다. 그랬던 재테크가 지금은 밀린 숙제 같은 부담감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다 남과 비교하는 조급함 때문이다. 좋은 스터디를 찾아서 열심히 부동산 공부를 하게 됐지만, 열렬히 달리는 나보다 훨씬 속도가 빠른 스터디메이트들과 함께하느라 부담감이 생기고 있다. 아무도 나에게 부담가지라 하지 않았지만 은근 이게 부담이다. 들어야 할 강의가 늘어나고, 알아야 할 개념들이 넘쳐난다. 이때까지는 내가 궁금해서 공부했던 것들이, 이제 남들과 속도를 맞춰야 해서 공부해야 하는 것들로 바뀐 거다. 나의 순수한 내적 동기들이 퇴색하고 있다.
물론 이런 조급함이 내가 더 빨리 달리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 주는 면도 있다. 나를 지나쳐가는 사람들을 보며 좀 더 빨리 달려야겠다고 나 자신을 몰아붙이며 한 걸음 더 빠르게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거다. 나는 선천적으로 경쟁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피 터지는 대입 경쟁 때도 한발 떨어져서 공부했고, 내 대입 준비 때 목표는 '경쟁적으로 살지 않아도 좋은 성적을 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이제와 돌아보니, 이 성정이 재테크를 한다고 해서 바뀔 것 같지는 않다. 이제 달리기를 어떻게 하는지는 알았고 출발선도 훌륭하게 스타트를 끊었다는 확신이 든다. 그렇다면 더 이상 남의 페이스대로 레이스 하는 게 아니라 내 속도에 맞춰서 레이스를 해나갈 차례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에는 '메타인지'가 있다고 했다. 스스로를 되돌아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메타인지를 열심히 발휘해서 지금의 나를 돌아볼 시점이 왔다. 나는 지금 약간의 슬럼프에 들어왔고, 그 원인은 내적 동기의 추진력이 떨어져서다. 나도 모르게 남들과 비교하면서 달리려고 하니 내 템포를 잃어버린 연유도 있다. 남이 얼마 벌었는지, 몇 살이면 얼마가 있어야 하는지 같은 세상의 기준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나만의 기준, 내 마음의 소리에 좀 더 집중해줘야겠다. 그게 이 달리기를 오래, 건강하게 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일 거다.
내 속도에 맞게, 내가 행복하기 위한 과정임을 잊지 말자.
재테크는 단거리 달리기가 아니라 오래 달리기!
written by. 토핫(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