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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와 핫도그 Jan 20. 2021

주식 단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주식 단타 분투기


자주 가는 커뮤니티에서 이별한 사람을 잊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글이 올라왔다. 댓글에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떨기, 술 왕창 먹고 잠들기, 게임 시작하기 같은 내용의 조언이 올라왔다. 주식 단타 투자도 댓글에 달린 내용 중 하나였다. 주식 데이 트레이딩을 하면 빨간봉 파란봉에 따라 기분이 오르락 내리락 하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될 수 있다고 했다. 대댓글에는 국내 주식을 하면 낮 시간을 정신없이 보낼 수 있고, 추가로 미국 주식까지 하면 밤낮 24시간 완벽하게 옛 연인을 떠올릴 시간이 없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주식 단타는 먼나라 이웃나라 이야기라 웃으면서 넘어갔다. 주식 공부를 하면서 단타로 돈을 크게 벌었던 사람은 말년이 좋지 않다는 이야기나, 단타는 상위 몇 %를 제외하면 돈 버는 사람이 없다는 글을 워낙에 많이 읽었던 터였다. 평일에는 회사에 출근하니 증시에서 가장 중요한 9시~10시에 주식 창을 보고 있기 어렵고, 소심한 새가슴이라 추세를 보면서 따라가는 단타를 할 자신도 없었다. 당연히 최소 몇 년의 중장기 포트폴리오가 나에게 알맞는 투자법이었다.


단타를 하다가 망하는 길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주식 폭락 직후 대세 상승기에 주변에서 너도 나도 돈을 벌었다는 소리가 들린다. 공부는 안했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계좌를 개설한다. 처음엔 수익 목표와 자금을 소박하게 정한다. 아무거나 사기엔 무서우니까 널리 알려진 우량주를 매수해서 3~5% 정도 수익이 나면 매도한다. 상승기에는 우량주도 변동성이 심해서 수익이 난다.


단타 초반에는 초심자의 행운으로 돈을 조금씩 번다. 몇 번 수익을 내는 게 반복되면 그게 자신의 실력인 줄 착각한다. 이제 어느 정도 주식을 해봤으니 자신의 안목을 믿고 큰 자금을 변동성이 큰 중소형 주에 몰빵한다. 그때부터 귀신처럼 주가가 하락하고 비자발적 장기투자자가 된다. 운이 좋으면 몇 년 안에 원금을 회복할 수 있지만 대체로 원금 손실 나는 경우가 많다.


나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게 단타는 패망의 지름길이라는 걸 아는데!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었다. 내가 정한 기간 만큼만 하면 되겠지. 남들도 이 파도를 탄다는데 나만 빠져 있으면 아쉽잖아. 고점에 물려도 장기 투자자로 전향할 수 있을 만한 우량주로 트레이딩을 하면 되지 않을까. 모든 단타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면서 그렇게 대망의 단기 투자라고 쓰고 투기가 시작되었다.


국내 주식과 미국 주식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한국 장은 회사에서 근무하는 낮에 호가창을 볼 시간이 없었다. 기존에 투자하던 것들도 모두 미국 주식이라 자연스럽게 미국 종목을 선정해서 사고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심하게 몇 백만원을 넣었고 곧 수익이 나는 걸 보고 몇 천 만원을 넣은 전형적인 망하는 개미의 행보를 걸었다. 개미는 뚠뚠, 오늘도 뚠뚠, 열심히 단타 치네.


초심자의 행운이 내게도 있었다. 연말과 연초에 열심히 사고 판 덕분에 수수료와 세금을 제하고도 꽤 수익이 생겼다. 이렇게 매매하면 나도 금세 부자가 될 수 있으려나, 투자금이 조금 더 크면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을텐데 무지 아쉽다. 헛된 꿈을 꾸면서 새벽녘에나 잠이 들었다.


수익이 났음에도 단타를 지속하지 못한 이유는 두 가지다. 일단 잠을 제대로 못잤다. 저녁 11시 30분, 장이 시작 할 때 딱 30분만 호가창을 지켜보다가 자정에 잠을 자겠다고 엄중히 선언한다. 요동치는 호가창에 심장이 바운스 바운드 두근대기 시작하면 12시가 지나도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한다. 새벽 3시는 기본이고 심각한 날에는 장 마감 시간까지 꼴딱 날을 샜다. 시간 외 가격을 보느라 1초도 잠을 못자고 출근 하는 날도 있었다. 하루에 8시간은 잠을 자야 다음날 컨디션이 유지되는 유리몸에게 이건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다. 지속 가능한 투자가 불가능했다.


또 다른 문제는 내가 좋아하는 투자자 켄 피셔가 "이제 신중하게 투자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에 모든 주식이 미친듯이 하락할 때 하락은 곧 끝날 것이고 지금이 매수할 시점이라고 외쳤다. 주가가 약간 반등하던 시점에 언론에서 더블 딥(경기 침체 후 잠시 회복기를 보이다가 다시 침체에 빠지는 이중 침체 현상)을 외칠 때도 켄 피셔는 "역사상 더블 딥으로 볼 수 있는 구간은 3번 뿐이었고, 발생 확률은 10퍼센트 남짓이라고 했다". 지나고 보니 그의 말이 다 맞았다. 투자자들 중 최고의 낙관주의자가 침착하라고 하니 이번에도 신중해야 할 시점이 온 거다.


지금은 다시 침착한 장기 투자자로 돌아왔다. 내가 몇 달 동안 한 건 투기이지 투자와는 거리가 멀었다. 기초적인 기업 분석도 없었고, 오로지 차트만 봤다. 딱 하나 규칙을 정한 건 고점에서 물려도 장기투자 할 수 있는 주식이어야 한다 뿐이었다. 다행히 주식 신이 보우하사 초심자의 행운으로 돈을 잃지 않고 투기가 끝났다. 누군가는 단타로 부자가 됐겠지만, 그게 나일리는 없다.


written by 토핫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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