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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끼와 핫도그 Jan 23. 2021

추억 팔이는 왜 이렇게 재밌을까

대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소울 푸드, 빽순대! 코로나 끝나면 또 먹으러 가야지. 


수다의 신이 몸에 빙의하는 날이 있다. 매번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특정 친구들을 만나서 흥이 오르면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이 다함께 접신의 경지에 오른다. 발현 능력으로는 입을 털어도 털어도 할 얘기가 끊임없이 떠오르고, 시간이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시계를 보면 너댓 시간이 확 지나가 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떠들고 헤어져야 할 때 쯤 “우리 다음번엔 언제 만나지”를 외치면서 현실로 돌아온다.


만날 때마다 접신과 빙의를 반복하게 되는 친구들은 대학에서 동기로 친해졌다. 구성원은 나 포함 6명, 대학교 시절부터 10년이 넘게 친목을 다지는 중이다. 그 사이에 다들 결혼하고 몇몇은 아기도 낳았다. 다들 멀리 이사가지 않고 근처에 살아서 1년에 몇 번씩 모인다. 작년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상반기에 한번 만난 게 전부지만 여전히 얼굴을 보면 수다가 너무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코로나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못만나서 보고싶다!!를 외치던 어느 날이었다. 이제나 저제나 만날 수 있을까 하다가 친구네 집 한 곳에서 세명이 따로 모였다. 4인까지는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세명씩 따로따로 만나는 게 좋겠다고 해서 우리끼리만 봤다. 다른 친구들도 둘 셋씩 조직해서 일정을 맞춰보기로 했다. 마스크 끼고 조심조심 접선하기로 랜선 손가락 걸고 약속했다.


오래간만에 보는 데다가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일찍 오라는 집주인 친구의 신신당부가 있었다. 오전 9시에 친구네 집으로 달려가면서 중고등 학생 때도 친구를 만나러 이렇게 부지런하게 나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착하자 마자 와플 브런치와 시작된 수다는 밤 8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끊임없이 먹으면서 쉬지 않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 이정도면 목이 쉴 법도 한데 쌩쌩한 성대를 칭찬하며 헤어졌다.


만나서 거창한 수다를 떠는 건 아니다. 이 친구들과는 카톡방에서 24시간 쉴 새 없이 수다를 떨고 있기에 근황 토크를 따로 할 것조차 없다. 친구 한명이 애 낳을 때도 "나 제왕절개 잘하고 올게! 화이팅!"하고 떠난지 1시간 뒤에 아기와 셀카 찍은 사진을 전송해줬다. 유럽 여행에선 시차를 극복하고 실시간으로 사진과 톡으로 근황을 전해서 밤낮이 다른 나라에 갔는지 조차 헷갈렸다.


새롭게 벌어진 일은 이미 카톡방에서 모조리 전달했으니 만나서 하는 이야기는 주로 과거에 벌어졌던 사건들이다. 4년을 거의 붙어다니며 수업을 들어서 당사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친구가 말해준다. 대학 때 연애했던 흑역사와 그들의 근황, 대학 선후배들 중에 새로 들려온 흥미로운 가십, 누구 학점이 몇 점이었더라? 같은 이미 끓여도 너무 끓여서 구멍이 뻥뻥 뚫린 사골이 된 추억 팔이다.


들었던 얘기를 또 듣는데 재밌는 이유를 안다. 했던 얘기 다시 해도 심드렁해 하지 않고 그 얘긴 들을 때마다 새롭네-라고 부둥부둥 해주는 분위기라서 오가는 대화가 즐겁다. 언제부턴가 친구들과 서로의 고슴도치맘이 되어서 무조건 편을 들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한 사람이 무슨 일을 겪고 왔다고 하면 "누가 우리 애 기를 죽이고 그래욧!!"이 유행가 구절처럼 반복된다. 덕분에 오랜시간 동안 한번도 싸운 적도 없고, 기분 상한 적도 없는 사이가 되었다.


또, 얼마 남지 않은 서로의 20대 시절을 기억해주는 사람들이라 소중하다. 학교라는 공간에서 친구를 사귀는 건 초반에는 랜덤으로 아이템을 뽑는 가챠 같다. 옆에 있는 사람과 취향이나 성격이 맞는지 다른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하나씩 카드를 뒤집어서 확인 해봐야 한다. 대학은 중고등 학교와는 다르게 마음이 안 맞으면 빠르게 멀어져도 사는데 지장이 없으므로 카드 맞추기에서 통과하면 오랜 시간 친구로 지낼 수 있다. 지금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서로의 성격과 취향을 속속들이 알면서 과거까지 기억해주는 산증인들이다. 취향을 공유하니 추억 팔이가 아니라 아무 얘기나 해도 티키타카가 맞아서 즐겁다.


내 기억엔 다들 갓 스무살이 된 풋풋한 모습들이 남아 있는데 어느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되었다. 시간이 더 지나면 현재의 얼굴들도 추억이 될 거다. 이 친구들과는 30년 뒤에 머리 하얘진 할머니가 되어서도 하하호호 떠들고 있을 것 같다. 그때쯤이면 조카들도 무럭무럭 자라서 엄마 껌딱지에서 벗어나 있을 거고, 우리는 더 자유롭게 추억을 파는 수다를 떨 수 있겠지.


written by 토핫 (핫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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