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끝까지 버티지 못한 사람이 되었을까

존버가 미덕이라 여겼던 착각의 궤도를 이탈하며

by megedi

아침 7시,

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오늘을 살아낼 힘'이 아니라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서늘한 의무감이었다.

지하철 플랫폼에 줄을 선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무채색이다. 나 역시 그 풍경 속에 섞여 덜컹거리는 지하철에 몸을 맡긴 채, 보이지 않는 거대한 톱니바퀴의 일부가 되어 회사라는 목적지로 향하곤 했다.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나의 목표는 소박했다.

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주는 안도감, 내 몫의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

매슬로우가 말한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다.

하지만 인간의 욕망은 간사하게도 그 지점에 머물지 않았다.


배가 부르자 마음이 고프기 시작했다.

단순히 일터를 넘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 즉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기분 좋은 '티키타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간절해졌고, 내가 흘린 땀방울만큼 투명한 보상을 손에 쥐고 싶었다.

마침내 내 이름 석 자 뒤에 붙은 직함이 단순한 꼬리표가 아닌, 나라는 존재를 증명하는 완벽한 인장이 되길 바랐다.




끝내 버티지 못한 사람


‘일을 잘하고 싶다’는 열망은 독약인지 성배인지 모른 채 들이켜게 되는 달콤한 유혹이었다.

나는 회사에 내 시간과 열정, 그리고 가장 반짝이는 감정들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내가 회사를 아끼는 만큼, 회사도 나를 아껴줄 것이라는 순진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라는 차가운 시스템 안에서 나의 애정은 종종 '가성비 좋은 자산'으로 치환될 뿐이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한 명의 고유한 인격체가 아니라, 언제든 대체 가능한 소모품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필요할 때는 영혼까지 탈탈 털어 넣으라고 부추기다가도, 상황이 바뀌면 차갑게 등을 돌리는 조직의 생리를 목격했을 때의 배신감은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시렸다. 뒤통수가 얼얼한 상황에서도 나는 '프로 직장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웃어야 했다.

사회생활이란 원래 더러운 꼴을 봐도 삼키는 것이라며, 그것이 어른의 무게라고 스스로를 가스라이팅했다.



‘착한 직장인’의 존버의 미덕


우리 사회는 '존버(끝까지 버티는 것)'를 미덕으로 숭상한다.

버티는 자가 승리하는 것이고, 중도에 하차하는 자는 패배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나 역시 그 낙인이 두려워 악착같이 버텼다.

출근길 지옥철에서 좀비처럼 흔들리면서도 꾸역꾸역 하루를 응원해보고,

퇴근 후 녹초가 되어 침대에 쓰러지면서도 "내일은 나아질 거야"라는 거짓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몸의 본능은 머리의 의지보다 정직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음속에 즐거움이 머물 자리가 사라졌다.

동료들과의 수다조차 억지로 자아낸 소음처럼 버거워졌고, 한 달의 고단함을 보상해주리라 믿었던 월급날의 환희는 반나절도 채 버티지 못한 채 신기루처럼 증발했다.

나는 회사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내 삶을 지키기 위해 회사라는 수단을 이용하는 사람인가.

질문의 선후관계가 뒤엉키기 시작하자 무기력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버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멈추기로 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나를 갈아 넣어 얻는 성취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 좁은 쳇바퀴를 벗어나면 정말 낭떠러지뿐일까...?


결국 나는 '끝까지 버티지 못한 사람'이 되어 보기로 결심했다.

누군가는 나를 끈기 없는 사람이라 손가락질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선택은 포기가 아니라 '선언'에 가까웠다.

나를 갉아먹으며 유지되는 평화는 가짜라는 선언,

타인의 기준에 맞춘 정답지에 나를 끼워 맞추지 않겠다는 선언 말이다.


궤도를 이탈한 뒤 마주한 세상은 생각보다 무너지지 않았다.

여전히 불안하고 혼란스럽지만, 적어도 이제는 내가 어디로 걷고 있는지를 스스로 결정한다.


'존버'라는 미덕의 감옥에서 걸어 나오자,

비로소 내가 놓치고 살았던 사소한 계절의 변화와 내면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버티지 못한 것이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멈춘 것이다.

때로는 끝까지 가는 것보다, 제때 멈춰 서서 돌아가는 길을 찾는 것이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이제야 배운다. 나는 이제 '끝까지 버틴 승리자' 대신, '나답게 살아가는 항해사'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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