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혜 Apr 11. 2022

자격지심을 자긍심으로.

직업에 대한 편견

이 업종에 일을 하면서 입주 현장 관련해서 다양한 사장님들과의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

청소일을 시작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지역에서 업계 1위라 불리는 청소업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으로부터 얘기 많이 들었다며 한 번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선망의 대상이었던 사장님과 알고 지내게 된 것만으로도 너무 황송스럽고 이 직종에서 성공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어 약속한 날 아주 부푼 마음으로 만났다.

50대 초반의 여 사장님으로 이 업에 종사한지는 10년 정도 되셨다고 하셨다.

청소업으로 시작했으나 다른 품목들을 접목해 다양한 품목들을 전문적으로 시공하는 업체로 키우시고, 공동구매 현장을 직접 주도하며 거의 대부분의 아파트에 공동구매를 이끄시는 위치에 계신 분이셨다.

험하다면 험한 현장일에 종사하는 남자 사장님들 사이에서도 전혀 굴하지 않고 빠른 판단력과 추진력 등으로 리더로서 손색없는 카리스마를 갖춘 멋진 분이셨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 그 사장님이 자신의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의외인 부분이 있어서 적잖이 당황스럽기 시작했다.

자기는 이 일이 아주 부끄럽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을 하시는 거였다. 그리고 "친구들은 아직도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비단 청소업뿐 아니라 다른 품목에서도 탑을 찍으셨고, 엄청난 수익을 벌고 계신 데다가, 입주시장에 필요한 다양한 품목들의 사장님들이 우러러 볼만한 위치에 계시고 그렇게 자기 일에 자긍심을 가질만한 충분한 상황임에도 말이다.

왜 이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일에 열심이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시고, 그 일에 대한 책임감도 충분한 분들이 왜 대외적인 시선들의 틀을 깨 수부지 못한 채 그 안에서 당당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시는지 나로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나의 모습에 대한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고, 그 분야에서 전문가 소리를 듣게 되고, 업계에서 손꼽히는 업체가 되었다 할지라도 못 배우고, 직업을 찾다 찾다 할 게 없어서 마지막 종착지로 이 직업을 택했을 거라는 ‘청소’하는 사람에 대한 편견으로 나 스스로를 당당하지 못한 부끄러운 사람으로 대우하게 될까.

답은 ‘아니오’였다.



뭣도 모른 채 청소업을 시작했을 무렵 나 또한 그 편견 속에서 허우적대던 시기가 있었다.

사람들은 참 쉽게 판단하고 쉽게 말한다.

상냥하게 “너무 깨끗하게 잘해주셔서 감사해요”라고 웃으며 얘기하고 뒤돌아서며 퇴실할 때 뒤쪽에서 내 귀에 다 들리도록 자기 아이에게 하는 소리 “너도 공부 안 하면 이렇게 힘든 일 하면서 살아야 된다”

어리고 여자인 데다 직종마저 청소업을 하는. 그야말로 이름만 사장인 청소하는 여자를 대하는 다른 사장님들의 언행에서 묻어나는 멸시와 조소.

너무 많이 겪어서 아무렇지 않다 느껴지기까지 하는 반복되는 무시들.

면전에서 혹은 뒤에서 다 들리도록 대놓고 욕을 하는데 사람인 이상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처음에 업체를 시작했을 땐 겨우 청소 팀원 2명의 작은 업체로 시작했고 월소득도 유치원 교사보다만 좀 더 벌 수 있다면 좋겠다 생각했기 때문에 처음부터 큰 포부를 가지고 시작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꾸준히 예약을 받기 시작하자 이 일은 내가 열심히만 한다면 부지런히 일한 만큼의 수익을 충분히 낼 수 있는 직종임을 느꼈다.

그리고 하면 할수록 입주시장의 규모가 보이기 시작했고, 이 블루오션 시장에 작은 청소업체로 만족한다는 것 자체가 나 스스로 작은 우물에 갇혀 있기를 자처하는 꼴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3자들의 눈에는 직함이 '사장'이라고는 하지만 내가 3D 직종에 종사한다는 이유만으로 자연스러운 멸시의 시선을 던지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선과 편견을 대놓고 언행으로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모르지는 않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에 청소방법을 하나 더 연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타인들의 뾰족한 시선들에 익숙해진 나는 이 직업을 하면 할수록 더 큰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면서 설레어하고 있었다.

이런 긍정적인 기운들이 힘든 현장에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활력을 일으켜 열심히 버티게 되었던 원동력이 되어준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남들의 편견 어린 시선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일임에도 땀 흘려 일한 만큼의 대가를 얻을 수 있는, 머리 굴리지 않고, 요령 피우지 않고 현장에 나갔을 때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일한 진정한 노동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직업임에는 한치의 의심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시할 수 없는 부분, 수익면에서도 굉장히 매력적인 직업이었다!


이 직업을 택하고 하면 할수록 현장에서는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부족한 부분에 있어서는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다른 사장님들에게 물어보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보를 비교해보고, 최적화된 방법을 찾아냈고, 내부적으로는 함께 일하는 팀원들을 독려하고, 외부적으로는 점점 더 인지도가 커가고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내 안에서 키워진 자긍심과 당당함이 주변의 시선들에 휘둘리지 않도록 중심을 잡게 해 주었다.


순수하고 열정적인 노동의 가치를 몰라주는 사람들, 그들이 판단하는 경제적 가치로 본다면, 내가 얼마를 버는지 모르는 사람들의 교만한 태도들. 씁쓸하게도 나중에 내가 얼마 정도를 버는지 아는 사람들은 나를 대하는 태도가 확 바뀌기도 한다.

그런 것에 휘둘릴 필요가 전혀 없음을 나 스스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문제가 아닌 편견 어린 시선으로 가득 찬 그들의 문제였기 때문에 그런 일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직업에 귀천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곧잘 세상이 정해놓은 잣대로 직업을 평가하곤 한다. 직업이 귀하고 천하고를 가리는 기준은 무엇일까.


내가 이 일을 하면서 계속해서 낀 건 '특정 직업의 가치를 결정하고 평가를 내리는 건,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그 직업에 종사하는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있다.

반대로 나는 어떤 마인드로 일을 하는지에 따라, 멀리서 봤을 때는 비극처럼 보이는 일을 할지라도, 내게는 희극일 수도 있다는 걸 몸소 느끼게 되었다.

나는 청소업에 종사하면서 '청소'라는 직업에 대한 매력을 충분히 느꼈고, 이제는 나 스스로 그 어느 직업보다 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오랜 현장의 노하우로 숙련된 기술을 가지고, 유연하면서도 단호함을 갖추시고, 힘든 노동을 아직까지도 척척해내시는 현장에서 아직도 뜨거운 땀을 흘리시는 선배님들을 볼 때면 정말 멋있게 느껴지고 존경심이 우러나온다.

이런 분들이 세상의 편견만으로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비하할 필요는 절대로 없다고 느낀다.

청소일을 하시는 모든 분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학원에서 새로운 꿈을 키우는 훈련생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해준다.

누가 당신을 어떤 식으로 비난하든지, 그건 그들의 문제지 나의 문제는 아니라고.


나 스스로 당당하고 자긍심을 가진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리고 그 당당함은 누구에게나 보인다.

당신의 당당한 자부심으로 언제 어디서나 빛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전 06화 선택과 집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