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혜 Mar 07. 2022

선택과 집중

한 사람에게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어렸을 때 나는 무척이나 소심한 아이 었다.

국민학교 3학년 때의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그때 내 짝지는 요즘으로 치면 반에서 힘 좀 쓴다는 '짱'이었다.

늘 싸움을 일삼던 아이라 얼굴에 상처들이 종종 새로 만들어져 있어서 어린 내 눈에는 정말로 조폭 같아 보였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처럼 소심하고 간이 작은 아이에게는 어무나도 무서운 존재였다.

살아가는 세계관이 너무나도 다른 둘이었기에 서로의 세계를 굳이 침범하지 않고 지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미술 준비물로 찰흙을 2개씩 준비해 오라고 하셨다.

선생님의 말을 어기는 것이 무엇보다 무섭고 두려웠던 나는 그 어떤 숙제와 준비물도 단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는 그야말로 모범생이었다.

3교시가 미술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된 짝지는 당연히 준비물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는 나의 찰흙을 빼앗고 400원을 던지면서 "너는 새로 사와"라고 얘기했다.

이 상황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선택들은 무엇이 있었을까.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며 찰흙을 되돌려달라 얘기하는 것이 1순위였고, 말을 듣지 않는다면 선생님께 얘기해서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되면 한 번의 위기는 모면하더라도 고자질의 대가로 앞으로의 괴로운 나날들을 보내야 된다는 현실이 더 두려웠고, 또 그렇게 '한번 더' 선생님에게 나쁜 아이라고 낙인찍히게 되면 이 아이가 얼마나 속상해할까라는 말도 안 되는 걱정까지 했다. 결국 울면서 학교 앞 문방구까지 뛰어가서 찰흙을 사 왔었다.

당연히 10분의 짧은 쉬는 시간 안에 제때 도착하지 못한 나는 선생님의 "화장실 빨리빨리 다녀와라"라는 말씀이 그렇게 서럽고 억울하게 느껴져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미술시간 내내 울면서 수업을 받았었다.

나는 그런 아이였다.

A형이었던 나는, 소심한 A형이란 틀에 그대로 끼워 맞춰져 나는 태생부터 소심한 아이이니까.라고 나의 다양한 모습들을 바라보지 못하고 나 스스로 오직 소심한 아이로만 나의 성격을 한정 지어버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내가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다양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조금씩 바뀌어갔고, 그래서 성인이 되었을 땐 내 입으로 얘기 안 하는 이상 나를 'O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유아교육학과를 선택하면서 아이들이든 어른이든 대상을 떠나 대중의 앞에 서야 하는 직업에 임하기 위해서의 성격변화는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었고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고 내가 아이들의 대변인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엄마'로서 가져야 할 성격들이 새로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벗어나지 못했던 성격이 있다.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부분과 타인들의 시선이었다.



심리학에서는 타인들의 시선에 흔들리는 건 결국 그런 문제점들이 내 안의 자아와 맞닿아 있다고 한다.

타인이 뭐라 하든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건 아무런 의미도 없이 흘려버릴 수 있지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타인이 그걸 지적하면 나 스스로 뜨끔해지며 화가 난다던지, 민망함에 더 움츠려들 던 지 등의 다양한 반응들이 표출되면서 내 내면이 흔들리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나 자신의 약점은 스스로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흔히 말하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처럼 스스로의 약점과 장점을 모두 인지하고 밸런스 있고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있다면 흔들리지 않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누군가 나의 부족한 어떤 부분을 건드리기만 해도 흔들리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바람이 불어올 때면 여지없이 심하게 흔들렸었다.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 그리고 다른 사람의 평가에 휘둘렸던 이 성격이야말로 내가 '청소'라는 일을 함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일에 집중하기에도 모자란 에너지들을 너무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초보이기에 아직 익숙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이 당연하고 부족한 부분은 수정해 나가고 고쳐서 발전하려는 마음가짐과 노력으로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었는데, 고객들이 비슷한 금액을 지불하시고 다른 업체보다 더 부족한 서비스를 받았다고 생각하실까 봐 늘 노심초사하고 불안했었다.

그리고 청소라는 직업은 클레임과 함께 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자주 발생하고 모든 고객들의 눈높이를 맞추기는 힘들다.

하지만 처음부터 내게 그런 가르침을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고객의 클레임이 들어올 때면 나는 정말 청소라는 직업이 어울리지 않는 것인가, 우리 업체는 청소를 못하는 것인가 라는 자책들로 의기소침해지기 일쑤였다.

아마도 좋은 업체가 되어야 한다, 고객들의 눈높이에 어떻게든 맞춰드려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이미지의 업체가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함께 그 무게에 힘을 실어 나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던 것 같다.


그런 생각에 침잠하다 보니 고객 상대하기가 두려웠고, 일 하는 데 있어서 즐거움을 찾기가 힘들었었다.

나 스스로 생각해도 대부분의 고객들이 만족한다고 하는데 왜 소수의 고객들의 까칠한 태도에 이렇게 흔들리나 싶을 정도로 그때의 나는 유리 멘털이었다.


업체 운영 초반에는 인터넷에 제일 큰 지역 카페나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의 카페와 밴드에 키워드 알림 설정을 해놓고 우리 업체와 관련된 품목이나 업체명이 노출되는걸 꼼꼼히 모니터 했었다.

조금이라도 안 좋은 말들이 나올까 싶어 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냈다.

어떤 일이든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는 꼼꼼한 성격이 업체가 발전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지만, 나 스스로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런 시선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지역에서 꽤 이름 있는 유명한 청소업체였고, 나와도 잘 알고 지내는 사장님의 업체의 이야기가 카페에 인기글로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글을 읽어보니 업체와 고객 양쪽의 입장을 다 고려해 봐도 사장님이 큰 실수를 하신 게 분명했고, 글을 작성하신 분은 사장님의 연이은 무책임한 행동들에 참을 만큼 참았다며 분노를 터뜨리고 있었다.

거기다 더 심각했던 상황은 '우리도 진짜 실망이었다'라는 식의 댓글이 여럿 달리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조금은 안일했던 그 사장님의 거짓된 영업방식들이 그대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 상황을 그 사장님이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댓글의 수가 100개가 넘어가게 되자 내가 더 초조해서 전화를 했었다.

그런 글이 올라온지도 까맣게 모르고 계셨던 사장님은 고맙다고 인사하시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으셨다.

그러고도 이틀 정도 그 글은 인기글 상단에 떡하니 올라있었고 조회수는 거의 만건이 넘었었다.


우리 업체였으면 어땠을까 두려운 생각에 마음을 쓸어내리면서도 그 사장님의 업체는 이제 망하는 건가 하는 마음에 걱정도 되었었다.

이후에 그 사장님과 통화해서 힘들게 마무리지었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그렇게 무책임한 서비스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낙인찍혀버린 업체를 운영하는 게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 생각은 정말 기우였다.

그 업체는 여전히 꾸준하게 예약이 들어왔고, 새로운 공동구매 현장에서도 선발이 되어서 업체를 잘 운영해 나가시는 것이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 내가 그동안 업체를 위하는 일이라 생각하며 소수의 클레임의 목소리에 집착했던 행동들이 어떤 면에서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들을 사서 하고 있었구나'라고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나는 모든 카페에 '키워드 알림'을 다 삭제했다.

그러고도 우리 업체는 여전히 일이 넘치듯 많았고, 우려할 만한 큰 사건들도 생겨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을 지켜보면서 그동안 노심초사하면서 알림 들을 확인했던 시간들이 참 허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업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장 잘 가르쳐주는 사람은 바로 '고객'이다.

조금은 까다로울 수도 있는 요구사항들은 분명히 대중의 니즈를 반영한 목소리이기 때문에 이 요구사항들을 조절하고 개선해야 할 사항들을 개선해나간다면 업체는 멈춰있지 않고 꾸준하게 발전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업체가 자리를 잡고 다수의 고객들이 만족하고 있는 서비스에  대해 청소 이외의 것으로 딴지를 건다거나 실현 가능하지 않은 요구사항들을 바라는 고객의 목소리에 흔들릴 필요는 없다는 걸 시간이 갈수록 수없이 깨닫게 되었다.


청소라는 직업은 '기준'이 참 모호하다.

기술적인 부분이라면 어떤 시공이 잘못되었고, 공산품이라면 불량의 기준이 뚜렷한 법인데, 청소는 그렇지 못하다. 어떤 사람에게는 깨끗해 보여도 어떤 사람에게는 한 개의 티끌도 용납되지 않는다.

결국 이 기준은 내가 잡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을 더 많이 바라보고자 했던 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않고 더욱더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성격 또한 조금 더 단호하되 상냥하고 유연하게 바뀌었다.

부정적인 면다 긍정적인 면에 더 집중함으로 인해서 자만심이 아닌 자긍심을 키울 수 있었다.



이전 05화 왜 청소를 하려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