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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Feb 25. 2022

呆若木鷄(태약목계)_까칠한 고객 응대하기

얼마 전 수업시간에 한 교육생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원장님, 청소업체 운영하는데 가장 큰 결격사유가 뭐예요?"

질문을 받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분노조절장애가 있으면 힘들 것 같네요

라고 대답하자 훈련생들은 일제히 빵 터졌다.

웃기려고 대답한 건 결코 아니었고 내 딴에는 굉장히 진지한 대답이었다.

내가 청소업을 하면서 계속해서 생각했던 가장 중요하게 요구되는 능력은 바로 ‘참을성’이다.



각각의 직업마다 요구되는 필수 능력들이 있을 것이다.

흔히들 청소업체는 청소를 잘하고 약품이나 도구를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능력만 있으면 업체를 창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청소업체를 운영한다는 것은 청소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청소를 아주 잘했다고 해도 그 기준이라는 것이 사람마다 제각각이라 생각지도 못한 어떤 부분에서 클레임이 발생할 수도 있다.

고객을 상대하려면 서비스 정신은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하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빠른 판단력과 융통성, 너무 많은 요구를 하는 고객님께 적절한 기준을 제시해드리는 단호함도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줄 ‘말발’과  팀을 원만하게 이끌어 나가기 위한 리더십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부분은 참을성이란 걸 업체를 운영하면 할수록 더욱더 선명하게 느끼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청소는 육체노동을 동반한다.

그래서 아주 힘들다.

노동의 강도로 따져보자면, 일 년에 한두 번씩 집 대청소를 하고 나면 다음날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심할 경우 몸살까지 나곤 하는데, 그런 대청소를 매일매일 한다고 보면 된다.

약품을 이용해 좀 더 편하게 청소하는 방법을 익히고, 시간이 지나고 현장일이 익숙해지면 청소하는데도 요령이 생기고 나면 훨씬 수월해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강도 높은 육체노동임은 확실하다.

한집을 하고 나면 가끔씩 걸레 한 장 들고 있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다.

이 정도로 힘이 빠지고 나면 사람은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그런 상황에서 까칠한 고객님을 만나면 멘털 관리가 힘들어진다.


창업한 지 얼마 안 된 초보 사장님들이 제일 많이 하는 실수가 여기서 발생된다.

고객님들의 눈높이는 천차만별이라 그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들어줄 수는 없고 무리한 요구를 할 때는 왜 안되는지를 설명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참 힘들다.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 자체가 상대의 설명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는 독선이 깔려있으므로.

어쨌든 우리도 인간인지라 그런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하는 고객님을 만나면 몸도 힘든 와중에 짜증이 치밀어 오르게 된다.

그렇게 더러웠던 집을 이렇게나 깨끗하게 청소했는데 아무리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받는 거지만 그래도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팔짱을 끼고 티끌 하나하나 꼬투리를 잡고 있는 고객을 상대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어쩔 땐 육체노동보다 이렇게 고객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더 피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고객을 상대할 때 답은 한 가지다.

청소업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요구를 하는 고객을 만났을 때는 안 되는 건 왜 안되는지를 단호하게 짧게 설명드리고.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부분이 있으면 그분들이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보는 앞에서 다시 한번 청소해드리는 거다.

제일 위험한 게 방전된 체력과 멘털로 짜증내고 귀찮아하며 고객님께 변명만 하고 있는 거다.

이 변명이 고객들을 화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태도들은 고객들로 하여금 능력 없고 최선을 다하지 않는 업체로 낙인찍게 만든다.

가끔 까칠한 고객님들을 상대할 때면 많이 힘들지만 오히려 더 상냥하게 대하면서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게 스스로의 마음을 재정비한다.

그리고 그런 고객을 상대하면 할수록 나의 고객응대 기술도 더 좋아지고, 이 과정에서 가장 요구되는 ‘참을성’의 게이지도 점점 더 향상됨을 느낀다.


재미있는 건 이렇게 까칠한 고객을 만족시키면 그들의 영업적인  파급력 또한 기대 이상이라는 점이다.

그렇게 그들은 우리 업체의 팬이 되고 한번 팬이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소개도 많이 해주고 이사 갈 때마다 우리 업체에 연락을 하는 골수팬이 되어 버린다.

아마도 그들과 알고 지내는 주변인들도 그 고객의 예민하고 까칠한 부분을 알고 있나 보다.

그런 사람이 만족하고 소개해주는 업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믿고 맡겨버리는 거다.


어쨌든 같이 언성을 높이거나 변명만 하게 되면 오히려 끝없이 고객과 입씨름만 하게 되어 더욱 큰 다툼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뻔뻔하리만큼 서비스를 당당하게 요구하는 그들에게 휘둘렸다.

세게 나올수록 주눅이 들어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하나하나 맞춰주다 정신을 차려보면 ‘이게 뭐 하고 있는 건가’, '나만 믿고 있는 팀원들 또한 지켜주지 못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변화의 필요성을 통감하게 되었다.

나부터도 고객이 무서워 제대로 응대하지 못하면 내 뒤에 있는 우리 직원들의 인격적인 대우는 기대할 수 조차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 고뇌들이 이어지면서 고객응대 공부의 필요성도 느끼게 되었고 그래서 원래부터 관심분야였던 심리학이나 인문학에 더욱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도 느끼고  상대방의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궁금해졌다.



장자의 달생편에 나오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태약목계


중국 주나라 선왕은 닭싸움을 매우 좋아했다.

한 번은 왕이 당대 최고의 투계 조련사인 기성자를 불러서

자신의 싸움닭을 맡기며 최고의 싸움닭으로 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열흘이 지나자 왕은 기성자에게 최고의 싸움닭이 되었냐고 물었고 이에 기성자는.

"지금은 한창 사납고 제 기운만 믿고 있어 기다려야 합니다."

라고 대답했다.


열흘이 다시 지나고 왕이 닭싸움을 할 준비가 되었냐고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다.

"다른 닭의 소리를 듣거나 그림자만 보아도 바로 달려드니 아직은 더 기다려야 합니다."


다시 열흘이 지나고 왕이 묻자 기성자가 대답했습니다.

"죄송하지만, 아직도 다른 닭을 보면 곧 눈을 흘기고 기운을 뽐내고 있으니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40일이 지났을 때 왕이 그를 불러 물었습니다.

"이제는 닭싸움에 내보낼 수 있겠느냐?"


그러자 기성자가 왕에게 대답했습니다.

"이제는 다른 닭이 소리 지르고 위협해도 쉽게 동요하지 않고 평정심이 있어 마치 나무로 만든 닭, 목계와 같습니다. 그래서 그 덕이 온전하여 다른 닭이 가까이 오지 못하고 그 기운에 다른 닭들은 쳐다보기만 해도 달아나 버리고 맙니다."


이 일화가 나에게 너무 큰 도움이 되었다.

주눅 들고 상대가 던진 말에 욱하고 반응하여 같이 덤벼드는 모습은 상황 정리에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것은 알고 있었다.

별일 아닌데 유독 유난스럽게 소리를 지르거나 까칠하게 구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란 것도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조용히 부탁하거나 부드러운 대화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끌어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

먼저 선방을 날려서 ‘나 만만하게 보지 마’라고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나약함을 감추려고 애쓴다.


목계(木鷄)를 알고나서부터 나는 유난히 흥분을 잘하는 고객을 만날 때면 오히려 더 차분하되 단호한 모습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마음으로는 항상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목계다. 나는 목계다. 나는 나무로 만든 닭이다. 나는 어떤 것에도 흥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단호한 모습에 더 날뛸 것 같은 상대가 오히려 주눅이 든 모습들을 여러 번 확인하고는 이것이 내 나름대로 찾은 정답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 방법은 고객응대뿐만 아니라 우리가 주변에서 이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날 때도 써먹을 수 있는 나름의 대인관계 스킬이 될 수도 있겠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예민한 성격으로 상대에게 맞추는 게 편했던 나는 이 직업을 유지함에 있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음은 확실하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라는 말이 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엄마가 된 엄마의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말이다.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사장인 나도 사장은 처음이라'라는 말이 자연스레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사장이 되었고, 사장으로서 가져야 되는 자질과 책임감과 단호함을 가지지 못한 여리디 여린 내가  이 드센 고객들을 상대하고, 어떻게 팀원들을 지켜야 할지 몰랐기에 고객들에게서 받은 스트레스와 더불어 사장의 자질에 대한 고민으로 정말 많이 힘들었었다.

하지만 그런 고민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이런 안하무인 고객들로부터 우리 팀원들은 내가 지킨다는 마음으로  단호하되 친절하게 거절하고 응대할 수 있는 방법들을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사장다운 사장의 모습을 갖추며 조금씩 성장할 수 있었다 생각한다.



알을 깨고 나온다는 표현이 맞겠다.

알만 깨어 나오면 이제 내 세상이다 싶었지만. 내가 깨고 나온 흩어져있는 껍질 들올 밟아 나오며 평평하고 부드러운 맨땅을 만날 때까지 난 수없이 찔리고 상처가 났다.

그리고 그 상처투성이가 아물 때 즈음 부드러운 흙의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내가 앞으로 나아가는 길엔 또 다른 장애물들이 수없이 존재하고 있으리란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흔들리고 아파야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걸.

흔들리면서 고민하는 시기가 있어야 나는 조금 더 중심을 잡고 설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걸.

그리고 오늘도 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불어오는 바람에 휘청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 난 다시 털고 일어날 것이고, 그리고 또다시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어제보다는 나은 오늘이, 오늘보다는 나은 내일의 내가 될 것임을 알기에 예전처럼 다가오는

내일이 마냥 두렵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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