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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혜 Jan 20. 2022

대망의 첫 집 청소하기

한 달 정도의 창업 준비를 마친 후, 첫 예약을 받았을 때의 두려움과 설렘이 교차하던 날이 생각난다.

새로운 일을 앞두고의 마음가짐은 다들 비슷할 테지만, 뭔가 대가를 받고 그 대가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과 내가 대표로 이름 올려진 사업체로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야지 하는 책임감으로 마음이 무거웠다.

 


첫 집은 그 시기에 입주를 시작하던 입주 아파트였다.

나름대로는 준비를 한다고 했는데 그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지금 돌이켜봐도 아찔하다.

그나마 행운의 여신이 이사청소가 아닌 신규 아파트 입주 아파트를 첫 시공 집으로 예약하게 해 준 것과 첫 고객님이 너무 너그러운 마음씨를 가지신 분이었다는 것에 감사라도 드려야 할 만큼 그날은 어떻게 청소했는지 머릿속이 하얘 질정도로 정말 혼이 쏙 빠질 만큼 정신없는 날이었다.


청소 범위는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루어져야 하고 각각의 공간을 청소할 때 어떤 약품을 이용해 어떤 방법으로 청소하는지, 마무리는 어떻게 하는지, 마무리할 때까지의 시간 배분과 3명의 팀원이 어떤 공간으로 나누어 청소할지 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음을 현장에 나가서 청소하면서야 깨달았다.



배울 것 없다며 현장 경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던 스스로가 참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도배풀 떼는 작업과 유리창과 거울을 얼룩 없이 투명하게 닦는 법, 윤기 나게 거실 바닥 닦는 법등은 지금 생각하면 기본 중에 기본인 기초 청소방법이지만, 청소에 대한 지식이 1도 없었기에 모든 것에 진땀만 흘리기 바빴다. 쌀쌀해지기 시작하는 10월의 날씨에 땀 뻘뻘 흘려가며 일을 했지만 그야말로 열심히만 할 뿐, 잘하지는 못한 현장이었다.

그동안 '일 못한다'는 소리는 못 들어봐서 알 수 없는 자아도취에 빠져있었던 데다가

 '일은 현장에서 부딪히며 배우는 게 가장 빨리 는다'는 말만 마음에 새기고 무작정 현장에 뛰어들었으니 청소뿐만 아니라 고객 상대도 어떻게 해야 할지 하루 종일 우왕좌왕하는 꼴이었다.

나 마저도 청소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이다.

6시간 정도면 마무리할 집을 거의 8시간에 걸쳐 청소했는데도 도대체 어디를 어떻게 청소했는지, 내가 한 곳이 아닌 다른 곳은 어떻게 되었는지 점검할 여유도 없이 청소 다 했다고 얘기하고 나왔다.


청소할땐 시간맞추느라 다른 건 신경도 못쓴채 긴장속에서 일을 하다가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아이 셋 키우고 집안일은 늘 하던 거라 체력은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긴장상태에서 거의 8시간을 일하고 안 쓰던 근육들을 썼더니 온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몸의 통증보다 더 크게 다가온 각성은.

이대로는 안된다

였다.



받은 금액에 대한 정당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었다.

이대로라면 예전에 내가 경험했던 전문 청소업체라는 이름만 가지고 그냥 일반인들이 집 청소하는 정도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다른 업체랑 다를 바가 없었다.

어떻게든 다른 업체와 차별화를 둬야 했고, 발을 내디딘 이 사업체가 잘되게끔 만들어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매일 밤마다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했다.

일을 시작하고 초반에는 잠도 거의 자지 못했다.

팀원을 어떻게 나누고, 어떻게 청소하고, 고객을 어떻게 상대하고, 어떻게 하면 더 간편하게 예약을 진행하고, 약품은 어떤 걸 써야 하고, 장비는 어떻게 더 갖춰야 하고....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 시기에는 꿈에서도 청소하는 방법들을 연구하는 꿈을 꾸었었다.


어찌 보면 앞뒤가 바뀌긴 했다.

모든 공부와 준비를 마치고 업체를 시작해야 했었지만, 그 당시에 청소를 제대로 가르쳐주는 학원이란 곳은 없었다.

그때부터 나는 어쩌면 청소야말로 배워야 할 지식과 기술이 수두룩하고 전문직업인인데 왜 가르쳐주는 학원이 없을까를 늘 아쉬워했던 것 같다.

어쨌든 매일 일을 하면서 현장에서 체감했던 부족한 부분들을 이론으로 채우고 하는 식으로 청소방법들을 익혀나갔다.

현장 경험과 공부를 병행해서 진도가 아주 잘 나갔던 것도 사실이다.

감사하게도 그나마 부족한 업체지만 아주 조금씩이라도 다른 업체들보다 꼼꼼하게 정성을 다해서 잘해주시고 친절하다는 후기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소개도 많이 시켜주셔서 예약은 늘 많았다.

그 시기에 우후죽순 들어서던 신규 아파트 입주물량과도 겹치기도 했고.

어쩔 때는 하루쯤 쉬고 싶은데 미리 잡아놓은 예약들로 지친 몸을 질질 끌며 현장으로 나가기도 했다.



그즈음 전문적이고 디테일한 청소방법들을 문의하고자 청소 동우회에도 가입했다.

다들 서로 응원하는 분위기이지만, 약품이나 방법 등은 업체 사장님들 자신만의 노하우기 때문에 알려주기를 꺼려하신다는 부분도 깨달았다.

거실 큰 창의 손이 안 닿는 창틀 쪽에는 어떻게 청소하는지, 뿌옇게 물때가 낀 샤워부스를 새 유리처럼 투명하게 만드는 법, 약품을 쓰지 않고도 마치 광택제를 바른듯하게 바닥을 닦는 법이라던지, 기름때로 찌들어 있는 가스레인지 후드를 손쉽게 청소하는 약품과 청소방법은 어떤 건지, 마감재에 따라 어떤 약품을 쓰고 약품 사용에 주의할 점은 뭔지 그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이 모든 것들은 현장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하나씩 알아갈 수밖에 없었다.

값비싼 장비들을 구입해서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들을 구별해 내고, 장비 통만 7~8번을 바꿔서 청소장비를 넣고 다니기에 최적의 장비 통을 찾아냈다.

이런저런 청소방법중에 가장 쉽게 적용가능하면서도 효과도 좋은 방법들을 이것저것 현장에서 적용해보았다. 특히 약품에 있어서는 누구 하나 시원하게 가르쳐주는 이는 없었기에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모든 약품을 써보며 비교 분석해볼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가장 빨리 배운다


라는 말에 그렇게 호되게 당했지만, 나는 우리 학원 훈련생님들에게는 이 얘기를 자주 한다.

내가 겪은 수년간의 시행착오들과 각 공간별 청소방법, 필요한 약품선정과 약품 사용법, 마감재에 따른 청소방법, 마케팅, 고객응대법을 이렇게 가르쳐주는 학원이 있었다면 나는 당장 등록했을 것이다.

이런 현장에서 겪을 수 있는 수많은 상황들과 디테일한 청소법들을 모두 다 익힌 훈련생들이 뭐가 두려울까.

물론 졸업생들은 수료식 날 정말 해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고 말을 하면서도 많이 두려워하신다.

하지만

'완벽하게 준비된 때는 없다.'

오늘 시작하든 한 달 후에 시작하든 나의 두려움의 크기는 매 한 가지일 거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벽인 줄 알았는데 지나가 보니 커튼이었다는 말이 있다.

내가 어떠한 역량으로 얼마나 잘 헤쳐나갈 수 있는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알아보려면 일단 부딪혀 보는 수 밖에 없다.

혹시 아는가. 정말 벽인 줄 알았는데 커튼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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