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때부터 혼이 반쯤은 나간 상태로 대화를 한 나는, 뭘 어떤 식으로 물어야 하는지에 대한 지식을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자각했다.
기준이 있어야,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를 결정할 것 아닌가!
투고를 하기 시작하면서, 투고방법만큼 중요한 게 어떤 출판사를 선택하냐 와 더불어 작가의 권리와 출판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걸 통화를 하면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일단 첫 통화에서 이상했던 점은, 그 어디에도 원고가 좋았다는 말은 없었다는 것이다.
시간상으로 봐도 내가 원고를 투고하고 1시간쯤 지난 상황이었으니 (물론 한두 꼭지만 읽고도 전반적인 글의 흐름이나 문장력정도는 가늠할 수 있겠지만) 출판사 입장에서도 이렇게 빨리 출간을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좀 성급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그리고 관련 계통 쪽으로 이미 다른 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자꾸 여러 명을 언급하시면서 친분이 있는지를 물어보셨다(아니, 내가 그분들을 어떻게 아냐고요~) 이런저런 얘기 끝에 반자비 출간을 제안하셨고, 작가님은 글만 쓰시는 분도 아니고 직업도 따로 있으니, 서울로 오실 필요도 없고, 제가 울산으로 내려가겠습니다. KTX를 타고 가면.... 어쩌고 저쩌고...
아무것도 모르는 내 입장에선 이거 어째야 하나 안 그래도 혼이 반쯤 빠져있는 상태에서, 주절주절 이어지는 말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집중하고 있자니 그나마 붙어있던 나머지 혼까지 날아갈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그래도 반자비 출판이라면 얼마나 드는지에 대해서는 물어봐야 되겠다 싶어 여쭤봤더니 250만원 정도를 작가가 부담하고 출간 후에 100권 정도의 분량은 내가 구입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이게 맞는 건지 아닌지에 대한 기준점도 없었던 나는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그래, 책 한 권 내는 데 그 정도는 투자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다. 생각의 끈이 이어질 새도 없이 그 대표님은 끊임없이 자신의 계획을 말씀하고 계셨다.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물었다.
"그런데 이 원고가 바로 출간을 할 정도의 원고인가요?"라고 묻자 잠시 (처음으로) 당황하신 대표님께서는 아, 제가 원고를 전체적으로 훑어보지는 못했지만, 분량으로는 문제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와 그럼 원고도 안 읽어보고 그냥 출간하는 거야? 너무하네~ 이렇게 책이 성의 없이 나오는 거였나.'설레고 반가웠던 만큼 허망했다. 그리고는 정신을 차리기 위해서라도 일단, 전화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통화를 마무리했다.
통화를 끝내고 인터넷에 그 출판사이름을 검색해 보니 출간된 책중에 의외로 알려진 책들이 있어서 놀랐다.
그리고 개인 블로그에는 출판사 대표님이 자기가 사는 곳으로 와서 출간계약을 했다는 글들이 좀 올라와 있었다. '이런 조건으로 계약을 진행하는 작가님들도 있구나... 이게 맞는 건가' 다시 한번 혼란스러웠다.
어찌 되었든 출간의사를 밝히는 출판사가 이곳뿐이라면, 이곳에서 출간을 해야 하나.
원래 반자비 출간비용이 저 정도는 드는 것인가? 초판인쇄량이 몇 권인데 그중에 내가 100권을 소화해야 하나. 온갖 물음표들이 머릿속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첫 통화 이후 일주일 동안 몇 군데 출판사에서 전화와 이메일이 도착했다.
그제야 첫 번째로 통화했던 출판사의 제안이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작가를 겨냥한 사기(?)에 가까운 제안이었다는 걸 인지하게 되었다.
(반자비출간일 경우 보통 70~100만원정도를 제안한다고 한다. 초보작가의 경우 인세는 통상적으로 8%정도를 작가가 가진다고 알고 있었지만, 나같은 경우에는 대부분의 출판사에서 10%를 말씀하셨다.작가가 홍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 좋지만 몇권 이상을 의무적으로 사야하는 건 아니다.)
감사하게도 생각 외로 여러 곳에서 출간의사를 밝혀왔다.
통상적으로 투고를 하고 2주 정도 지나면 채택 가능성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전에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은 정확했다.
2주 안에 출간의사를 밝힌 출판사 이외에는 검토해 본다 했지만 별다른 연락이 없었다.
단 한 곳, 이미 한 출판사와 계약을 한 직후에 한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나도 그 출판사에서 발행된 책을 여러 권 읽었었고, 좋은 책들이 나오는 곳이란 걸 알았기에 그 인연이 너무 아쉬웠다.
지금도 한 번씩 생각해 본다.
늘 책에 진심이 느껴지던 그 출판사에서 출간을 하게 되었다면, 내 책의 운명은 좀 달라졌을까?
최종 선택을 앞둔 출판사는 세 곳이었다.
한 곳은 출간 및 홍보 기획서를 멋지게 만들어 보내주시면서 꼭 출간하고 싶다고 여러 번 의사를 밝히셨던 곳이었다. 제안서 안에는 출판사대표의 대단한 이력과 더불어 다양한 분야의 출간책들에 눈이 현란해졌었다. 무엇보다 홍보제안이 너무 멋져서 맘에 들었고, 소속된 젊은 PD 님들의 잇따른 연락이 설레게 했던 곳이었다.
두 번째 출판사는 이미 직업 관련 에세이를 번역본으로 여러 권 출간한 경험이 있었던 곳이었고, 대표님께서는 투고한 원고는 좀 더 분량을 늘리고, 전문지식들에 대한 내용을 좀 더 보완하여 출간하셨으면 좋겠다 말씀하셨다. 왠지 모를 구체적인 세부방안과 문제점에 대한 교정들이 꼼꼼하다는 인상을 받았었다. 무엇보다 출간하게 되면 교보문고 쪽에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주겠다 약속하셨는데(그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읽고 싶은 책들을 선택하면 다 보내주겠다 하셔서 이미 출간된 출판사의 책을 여러 권 보내주시기도 하셨다.
세 번째 출판사는 이미 이름부터 뭔가 글을 쓰는 문인들이 있을 것만 같은 작은 출판사였는데 그래도 유명한 분들의 자서전이 출간되기도 했던 곳이었다. 대표님과 통화할 때 그 진정성과 조심스러움에 굉장히 마음이 끌렸었다.
결국, 나는 홍보를 잘해줄수 있을것 같은 출판사를 선택하기로 했다.
여러 명의 젊은 PD들이 전화를 해오고, 출간시기를 가장 빠른 시기로 잡아주었고, 희황 찬란한 홍보기획서로 내 눈을 사로잡은 출판사를 선택했다.
빨리 책으로 만들어지길 원했고, 왠지 모르게 더 이상의 글은 짜내기 싫어서 보내진 원고만으로 책이 출간되었으면 하는 귀찮음, 그래도 책으로 나왔으면 홍보를 잘해줘서 한 권이라도 더 팔리는 출판사에 맡기는 게 낫겠다는 결론이었다.
투고 당시에 조언을 주셨던 작가님의 말로는 "크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니고, 소형출판사나 1인출판사라도 그만큼 책에 진심이고, 출간된 책들을 하나하나 소중히 하는 출판사가 좋을 수도 있다"라는 말씀이 이제는 무슨 말인지 절절이 이해한다.
그리고 제안서는 어디까지나 기획단계, 제안일 뿐인 것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출판사를 선택할 것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한 출판사를 선택해서 느꼈던 서운함들을 다른 곳을 선택했다 해서 느끼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으니.
하지만 출간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다른 출판사들에서 그곳에서 출간된 책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홍보하고 다루는지 보고 나서야 깨닫는다.
하루빨리 책이 나와 세상의 빛을 보게 하는 것도 좋지만,
감사하게도 '선택'이라는 상황에 놓였다면,
그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들을 꼼꼼히 살펴보고 검색을 통해서 그 출판사에서 하나의 책을 얼마만큼 많은 매체에서 얼마나 꾸준히 알리려고 노력했는지 정도는 살펴봐야 한다는 것은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