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말하는 '셈'은 당연히 수학적인 셈을 뜻하기도 하겠지만, 자신이 받아야 할 권리들을 당당히 요구하거나 문의해서 조율하는 능력 또한 포함시켰다.
아마도 많은 작가님들이 계약을 진행할 때, 골방에 처박혀 글만 쓰던 창작의 영역에서 경제적인 영역으로의 변환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괜한 민망함을 수시로 마주할지도 모르겠다.
당시 내가 느낀 점을 적어보자면,
출판사에 대한 나의 마음_ 이제 함께 가는 '동반자'라는 대상관계정립과 함께 일단, 나의 원고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고 출간의사를 여러 번 밝히며 원고에 대한 애정을 듬뿍 보여주었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이 깔려있었다.
여러 출판사의 러브콜을 받을 때는 내가 '갑'이라도 된 것 마냥(물론 계약서에는 분명'갑'이라고 표기되어 있기는 하다) 우쭐했지만, 계약 후에는 '내 원고를 출판사에서 얼마만큼 이쁘게 다듬어주고, 얼마만큼의 열과 성을 다해 홍보해 줄지는 이제 출판사의 결정에 달렸다.'라는 생각에 출판사에 잘 보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많은 판매부수를 올리면 나도 좋고 출판사도 좋겠지만, 출간되는 많은 책들 중에서도 유독 내 책에 애정을 쏟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커지면서 자꾸 목소리가 작아짐을 느꼈다.
그리고 '책으로 출간되기만 해도 좋겠다.' 생각하며 투고했던 최하위 등급의 '을'의 위치에서 갑자기 '갑'의 위치로 전환되니, 겸손히 읍소하던 '을'이 내 권리는 내가 찾겠다는 '갑'으로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나부터도 적응이 안 되는 것이다.
출간에 대하는 나의 자세_ 순수창작물을 통한 자아실현이라기보다는 글을 팔아서 돈을 벌려고 하는 속물처럼 보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건 작가답지 않아' 체면치레하고 민망해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놓쳤다.
이쯤에서 좀 솔직해질 필요도 있다.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자아실현에다가 경제적인 수익까지 얻을 수 있다면 이만큼 멋진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까 어찌 됐든 당당하자!
앞서 언급한 여러 가지 자연스레 따라올 수 있는 걱정거리들은 실질적으로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는 별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건 내가 내 권리를 찾는다라는 개념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어떻게든 내 책을 잘 만들어서 출판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자!'라는 개념으로 다가간다면 좀 민망함이 줄어들지도 모르겠다.
인세를 조정하는 것 뿐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편집과정에서도 많은 민망함들이 생길 수도 있는데, 그때도 마찬가지다.
교정교열부터 표지디자인과 책값선정등 다양한 부분에서 내가 생각하는 부분들을 꼼꼼하게 의견제시하고, 조금이라도 더 완성도 높은 책을 만들어낸다면.
결국 그건 나에게도 좋고, 출판사에게도 득이 되는 건 자명한 사실이니까.
어쨌든 나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출판사를 선정했고, 계약을 진행했다.
인세와 출간시기정도의 정보만을 가지고 열심히 만들어 최대한 홍보해 준다는 출판사를 선택했다.
책 출간에 대한 그 무엇도 아는 바가 없었기에 출판사에서 '그렇다,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따라가는 수준이었다.
[ 계약서 상으론 확실히 '갑'이 맞긴 하다 ]
계약서를 받더라도 혹시나 다른 출판사에서 연락 올 것을 대비해 그 자리에서 바로 도장을 찍지 말고 집으로 와 꼼꼼하게 살펴보고 일주일정도 후에 계약서를 보내도 무관하다고 분명 조언을 들었었다.
하지만 눈앞의 계약서 앞에서는 '신중함' 보다 '후딱 해치우자'정신이 강하게 작용했고, 이미 들어올 제안은 다 들어왔겠지란, 안일한 생각으로 바로 계약을 진행했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그리고 2~3일 후에 평소에 좋아하던 출판사로부터 뒤늦게 출간제안을 받았었다 ㅠㅠ
지나고 생각해 보면, 이 또한 원래 그렇게 될 운명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는 '뜸 드리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하구나'라는 걸 또 한 번 마음에 새기기도 했고.
다시 한번 내가 계약을 진행한다면, 이번엔 좀 신중하게 진행할 필요성을 느낀다.
인세는 기본이고, 인세정산 시기, 책 발간시기, 책 출간의 전반적인 과정, 내 책에 투자할 수 있는 출판사의 홍보수단과 비용 등을 정확하게 물어보고 진행해야 하는 게 맞다.
상황에 따라 무시로 변경될 수 있는 상황이라, 이 정도는 짚어 놔야 하는 것이다.
물론 작가가 먼저 이것저것 물어보기 전에 꼼꼼하게 먼저 알려주고 제시해 주는 출판사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2000개가 넘은 출판사가 있다니, 출판사마다 계약진행방식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에는 출판사에서 계약이나 출판진행상황에서 꼼꼼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늘 궁금했고, 조금의 불안감은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한 달에 한, 두 권씩 꾸준히 새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였기에 그만큼 '내 책 한 권에만 공을 들이지는 않겠구나'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어떤 출판사와 계약을 하게 되든 위의 기본 사항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있게 논의하고, 정확한 답변들을 계약서에 삽입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