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행자 생활과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대가이겠지만, 다른 부분에서는 행자와 마찬가지로 배우는 단계입니다. 모르는 것은 부끄러운게 아니라 시작하기 때문에 겸손입니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다. 누군가를 이해하기도 전에 내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먼저 해버리면 공감대는 형성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이 고통 받고 있는데 '그런 건 고통스러워 할 일이 아니다'라고 내 맘대로 생각해버리면 그 사람의 고통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커집니다.”
세살박이 쿠르디도, 세월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어린 학생과 어른도, 이들을 잃은 부모와 자식의 고통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그저 “Event”에 불과합니다. 공감대가 형성되려면 나를 내려놓아야 하는데, 나는 호두껍질처럼 견고한 보호막을 두르고 있어 깨지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일에 “나만 아니면 괜찮아”라고 한다면, “나”가 모여 만든 “우리”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나”를 내려 놓고 “나”를 내려 놓은 자리를 잊어버리고 “길”떠나는 것을 “수행”이라 합니다. 절집이나 저자거리나, 삶 자체가 “수행”인데 그걸 모르고 살고 있습니다. 회사에 있는 동안 하루 종일 회사 일만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도 수행입니다. 우리는 절집에서 행자가 정신 없이 하루종일 일하는 것과 같은 회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급여를 매개로 회사와 계약한 시간을 낭비하면, 그것은 도둑질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수행이 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조금 심한 말로 인간이 되어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벌은 남이 주는게 아나라, 자기가 죄를 지어서 자기가 벌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복은요? 자기가 복을 지어서 자기가 복을 받습니다. 자기가 지금 받고 있는 것은 모두 자기가 지어서 자기가 받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적금을 타서 잘 쓰고 있지만, 다시 적금을 부어 놓지 않으면 나중에 쓸 돈이 없어 어려워집니다. 죄만 안 짓고 살아도, 세상은 살만 합니다. 문제는 어떤 것이 죄가 되는지를 모르고 산다는 것입니다. “나” 밖에 모르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죄를 불러들이는 트리거인지를.
2015년 10월 12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