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는 무한대의 색깔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우리가 색을 표현하고 수용할 때 청•황•적•백•흑의 다섯 가지 기준 색을 주축으로 합니다. 무한대로 펼쳐진 색깔 가운데 다섯 개만 고르고 그 다섯 개들의 조합으로 전체의 색깔을 표현합니다. 무한대의 색깔 가운데 다섯 개만 골라서 쓰는 격이니 결국 봉사나 다를 바 없지 않겠습니까?
논리와 추상은 세계를 바라보는 인간 사회에 구축된 약속 체계입니다. 언어로 구성되며 범주라는 개념으로 정립됩니다. 색의 종류는 무한하지만, 이것을 분석하여 범주로 분류하고 각각에 뜻과 이름을 붙이는 것이 추상입니다. 엄밀히 말해, 추상은 일반성이 아니라 특수성입니다. 인간은 특수성을 통하여 보편성을 이해하는 사고 체계를 갖습니다. 생각이 현실과 분리되어 생각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추상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체계와 문자체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생각 속의 세계와 현실 세계가 분리됩니다. 무한대의 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 속에서는 근본으로서 5개의 색만 존재하기 때문에 이것이 마치 “진리”인양 간주됩니다.
노자는 바로 이 뻣뻣함이 있는 이 관념을 죽은 것이라고 판정합니다. 관념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는 것이지요. 도구가 목적으로 바뀌는 현상. 이것을 두고 불법에서는 “전도몽상”이라고 합니다.
관련하여 유명한 구절 몇 개를 볼까요. "여보게,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라네" (Grau, teurer Freund, ist alle Theorie und grün des Lebens goldener Baum) 이 말은 괴테의 『파우스트(Faust, 1831)』에 나오는 명구인데, 레닌이 인용하여 유명해졌습니다.
금강경 사구게 중 하나를 볼까요. 凡所有相 皆是虛忘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상이 있는 것들은 모두 허망한 것이므로, 만약 일체의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면 바로 여래(진리)를 볼 수 있다.” 진리는 관념, Frame, Paradigm 그리고 이론에 있지 않습니다. 빌리되 취하지 말고, 이용하되 몸으로 삼지 말라고 합니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켰으면 손가락을 버리고 달을 봐야 하는 것이고, 뗏목으로 강을 건넜으면 뗏목을 버리고 제 갈 길을 가야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지나가는 길에 하루 밤 머물기 위해 들르는 객잔과 같습니다. 여행자가 하루 밤을 잘 지냈으면 객잔을 떠나서 제 갈 길을 가는 것이지 객잔에 계속 머물 일이 없지 않습니까.
세상 모든 것에서 하나도 취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노자의 “살아 있는 것이 부드럽다”라는 말에 숨은 의미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2015년 10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