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시인의 <옛 마을을 지나며>라는 시를 소개합니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
홍시 하나 남겨둘 줄 아는
조선의 마음이여
느낌이 확 오지 않습니까? 까치를 배려해서 감을 다 따지 않는 그런 마음.
겨울이 되면 산천초목이 모두 벌거벗습니다. 여기에 눈까지 내려서 덮으면 산이 하늘과 닿은 경계가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겨울은 산의 속살이 드러나는 계절입니다. 오규원 시인이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무릉리 한 시골집에 4년간 병으로 요양을 하며 틀어박혀서 쓴 수필집이 “가슴이 붉은 딱새(무릉일기)”입니다. ‘저것을 넘으면 도원이 있다는 서산이 보이는 무릉의 강변 외딴집’에서 쓴 일기입니다. 그래서 부제가 “무릉일기”입니다. 거기에서 겨울의 이 풍광을 기막히게 글로 써놓았습니다.
죽음과 삶에 대해서도 이렇게 풀어 놓았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는 죽음을 덮지 않고 삶을 덮는다. 그 그림자는 굴곡 많은 삶의 회로를 지워서 단순화시켜, 삶의 이행 과정에 변화를 유도한다. 무서운 것은, 그러므로,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이다. 죽음은 그 자체로는 실체가 없는 관념이며, 그 관념의 존재 양식이 그림자라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면 삶은 눈 쌓인 겨울 산처럼 벌거벗은 나신이 됩니다.
오규원 시인은 2007년 2월 2일 지병으로 사망했습니다. 시인이 쓴 일기 형식의 에세이라서 글 자체에 시적 감수성이 철철 넘칩니다. 절판되지 않았다면, 사서 읽어보라고 추천합니다.
대개 무릉이 있으면 도원이 없고 도원이 있으면 무릉이 없는데, 강원도 영월군에는 주천면에 무릉리가, 수주면에 도원리가 인접해 있습니다. 내 고향 영월은 무릉도원입니다.
2015년 11월 4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