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이 육체로부터 독립한 것이 근대입니다. 뇌는 육체에 속하고 이성은 뇌에 기반하지만, 이성은 뇌로 환원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이성은 정신의 한 범주입니다. 감성도 정신의 한 범주입니다. 이성과 감성 뿐만 아니라 통찰, 직관, 관찰 들도 모두 정신의 한 범주입니다. 정신이 스스로 활동하는 전 영역을 우리는 “생각”이라고 부릅니다. “생각이 없다”는 소리는 다시 말해 “정신 나갔다”는 말입니다.
사랑은 가슴으로 하지 않고 두뇌로 합니다. 시상하부의 뇌하수체 호르몬의 작용이 사랑을 일으키고, 그 호르몬에 의해 육체에 변화가 생깁니다. 감각은 그것을 느껴서 다시 뇌로 디버깅합니다. 우리는 감각의 변화를 사랑이라고 착각합니다. 사랑하면 가슴이 아픈 것은 모두 이러한 호르몬의 작용입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뇌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사실 나의 뇌는 그녀가 아닌 것 즉, 그녀가 가진 것을 사랑하는 것이지 그녀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육체도 그녀가 가진 것이지 그녀는 아닙니다. 두뇌가 하는 사랑은 그래서 허망합니다. 마치 One-Night Stand 후 아침에 밀려오는 공허함처럼. 아침에 일어나 피우는 담배 연기처럼 사라집니다. 그래도 인간은 탐닉하는 것이 본성이라 시작하는 순간에 느끼는 설레임으로 인해 사랑을 갈구합니다. 사랑은 가볍든 진지하든 정열적이든 건조하든 모두 두뇌가 하는 정신활동입니다. 표현 방식은 육체적입니다. 참, 인간적입니다. 도대체 나는 어디에 있고, 그녀는 어디에 있는 걸까요?
영감은 두뇌에 저장된 정보의 창발적 재조합 또는 재연결 과정에서 탄생하는 융합지식 또는 지혜입니다. 육체 활동에 연결된 두뇌의 활동은 매우 Depth가 얕습니다. 이런 두뇌 자체의 활동, 즉 의식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가 진행된 것이 근대와 현대의 특징입니다. 이전까지 의식은 신의 영역, 즉 종교의 영역이었습니다. 프로이트와 융에 의해 정의된 것이 무의식과 잠재의식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표면의식, 무의식, 잠재의식 이렇게 나눕니다. 불교 유식학에 비교됩니다. 유식학은 6식, 제7식(말라식), 제8식(아뢰야식), 제9식(무구식)으로 나눕니다. 표면의식은 6식에, 무의식은 말라식에, 잠재의식은 아뢰야식에 각각 유비됩니다. 영감은 말라식에서 올라옵니다. 6식을 통해 들어온 정보들이 아뢰야식에 저장될 때 말라식의 상태에서 재조합 또는 재연결됩니다. 그 과정에서 Back Draft처럼 되먹임이 일어나서 6식에 해당하는 “의식”으로 올라오면, 바로 유레카입니다. 말라식에서 잠재의식으로 정보가 변화하여 저장되는 과정은 매 순간 일어나지만, 온전히 두뇌가 그 과정에만 몰입하는 순간은 육체가 쉬는 동안입니다. 그래서 멍때림, 휴식, 수면, 놀이, 여행, Relax, Refresh 등이 중요합니다.
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한다면, 일이 잘 안 풀린다고 생각한다면, 일에 몰입할 것이 아니라,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라는 뜻입니다.
2016년 12월 1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