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는 “빈익빈 부익부”라는 방향 법칙을 갖고 있습니다. 그 결과로 자본주의는 주기적인 “공황”을 경험합니다. 대공황 이후에 슘페터리안에 의해서 국가의 재정정책이 개입하고 사회주의적 요소들이 자본주의에 흡수되면서, 국가의 부와 개인의 소득은 일정하게 같은 속도로 증가했습니다.
이 Balance가 70년대 말 80년대 초부터 틀어집니다. 국가의 부는 증가하는데, 개인의 소득은 증가하지 않습니다. 개인 소득의 보전을 위하여 전업 주부가 직장을 다니기 시작합니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증가한 그 동기가 시작부터 여성의 사회적 가치 실현이 아닌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부는 증가하는데, 개인의 소득은 증가하지 않습니다. 이 소비에 부족한 소득을 보전하기 위해 집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킵니다. 결말은 “펑”입니다. 이유가 99% : 1%의 부의 극단적인 불균형입니다. 상위 1%를 위한 경제. 국민의 개인 소득은 증가하지 않았는데, 상위 1%의 부의 집중는 끊임없이 증가하는 사회. 부가 정치를 지배할 수 있도록 법적 정치적 제도가 구조화됩니다. “파이 키우기” 이론, “낙수 효과 Trickle Down Effect” 등으로 부의 집중을 지지하는 이론도 탄생합니다.
이제 개인은 자기의 작은 파이와 떨어지는 물방울을 같이 나누어야 하는 후발 참여자들을 적으로 간주합니다. 이 구조적 환경을 만든 사람들에게 향해야 할 적개심이 나보다 더 비참한 상태에서 출발하여 나의 수준으로 편입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향합니다. 사회적 약자, 이민자, LGBT, 세대들에게 분노의 화살이 향합니다. 자기가 살기 위해 자기보다 더 나쁜 상황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적대시해야 하는 사회. 인류는 그렇게 병들어 갑니다. 어쩌면 항상 가해자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범이 되고 싶어 하는 공범의식을 갖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공범의식은 나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언제든지 비열해질 수 있다는 자의식입니다. “땡벌”이라는 노래로 조인성이 유명해진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보여준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입니다. 영화에서는 주먹과 칼이 수단이겠지만 현실에서는 세련된 법과 제도가 수단입니다. 우리에게 강요된 무지와 편견을 자양분으로 삼아서 더욱 세련된 수단으로 자리잡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지와 편견이 우리의 영혼을 잠식하면 우리는 좀비라고 불려야지 다른 무엇으로 불려야 하겠습니까?
2016년 12월 22일 독서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