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미학

by 송창록


건축가 승효상의 첫 책, “빈자의 미학”이 증보판으로 작년에 나왔습니다. 가격은 12,000원. 그럼 미건사에서 발간한 “빈자의 미학” 중고 초판의 가격은 얼마일까요? 보관 상태가 새 책과 같은 경우, 130,000원입니다.


1996년 출간된 '빈자의 미학'은 건축가 승효상과 동의어입니다. 건축학도들의 '교과서'이자 인문독자들의 '숨은 고전'인 책. 건축서로는 드물게 1만 5천 부 이상 판매되었지요. 책을 달라고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정작 저자인 승효상에게는 한 권도 없는 희귀본이라고 합니다. 초판을 발간했던 미건사에는 "찢어진 책이라도 구하고 싶다"라는 문의가 이어졌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건축은 공간의 미학입니다. 건물의 외형이 표현하는 상징보다 건물 자체에서 또는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구성되는 빈 공간이 본질입니다. 빈 것이 본질이고 빈 것의 쓸모를 위한 외형을 만드는 것이 건축이지요. 유는 무를 위해 존재합니다. 건축은 노자 사상의 확장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릇의 쓸모는 물건을 담는 빈 공간에 있다는.


건축을 하는 사람이 인문학적 이해가 없다면 목적을 잊은 것이지요. 마이크로 건축 또는 나노 건축을 하는 반도체 엔지니어가 인문학적 이해가 없다면 역시 목적을 잊은 것이지요. 내가 얘를 왜 만들고 있는지를 이해하고 있지 않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형태를 공간으로부터 유추하는 것은 있는 것들의 관계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것과 같은 성찰입니다.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섬이 있지요. 그 섬에 갈 수 있어야 합니다.

2017년 1월 19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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