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란 본래 없는 것

by 송창록

‘맞다 vs. 틀리다’의 관계와 ‘옳다 vs. 그르다’의 관계는 서로 다른 상태를 다루는 언어적 개념입니다. 맞다/틀리다는 사실의 True or False를 다루고, 옳다/그르다는 판단의 True or False를 다룹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데, 계기와 상황이 되면 탄생합니다. 실체가 본래 없습니다.


맞다/틀리다는 사실의 영역이므로 주체가 홀로 있는 경우에도 발생합니다. 사실의 기술과 표현은 주체가 거짓말을 의도하지 않는 한 항상 맞을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요. 정말 그럴까요? 1950년에 제작된 구로사와 아끼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은 한 가지 사건에 얽힌 당사자들의 사실이 모두 다르다는 것을 신랄하게 보여줍니다.


“사건이 벌어진 배경은 녹음이 우거진 숲 속. 사무라이 타케히로(모리 마사유키)가 말을 타고 자신의 아내 마사코(교 마치꼬)와 함께 오전의 숲 속 길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늘 속에서 낮잠을 자던 산적 타조마루(미후네 도시로)는 슬쩍 마사코의 예쁜 얼굴을 보고는 그녀를 차지할 속셈으로 그들 앞에 나타난다. 속임수를 써서 타케히로를 포박하고, 타조마루는 마사코를 겁탈한다. 오후에 그 숲 속에 들어선 나뭇꾼은 사무라이 타케히로의 가슴에 칼이 꽂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관청에 신고한다. 곧 타조마루는 체포되고, 행방이 묘연했던 마사코도 불려와 관청에서 심문이 벌어진다. 먼저 산적 타조마루는 자신이 속임수를 썼고, 마사코를 겁탈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무라이와는 정당한 결투 끝에 죽인 것이라고 떠벌린다. 하지만 마사코의 진술은 그의 것과 다르다. 자신이 겁탈당한 후, 남편을 보니 싸늘하기 그지없는 눈초리였다고 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자신을 경멸하는 눈초리에 제정신이 나간 그녀는 혼란 속에서 남편을 죽였다고 진술한다. 하지만 무당의 힘을 빌어 강신한 죽은 사무라이 타케히로는 또 다른 진술을 털어놓는다.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배신했지만, 오히려 산적 타조마루가 자신을 옹호해줬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자결했다는 것이다. 좀처럼 실체적 진실에 접근할 수 없는 이때, 실은 그 현장을 목격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나뭇꾼이다. 그는 마사코가 싸우기 싫어하는 두 남자를 부추겨서 결투를 붙여놓고 도망쳤고, 남은 두 남자는 비겁하고 용렬하기 짝이 없는 개싸움을 벌였다는 것이다.”


사실이 객관화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하물며 주체가 일으키는 판단이 옳을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다만 선택합니다. 옳은 것도 아니고 그른 것도 아닌 것을 날마다 선택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 선택의 기준은 저마다 다릅니다. 다른 생각과 기준들이 날마다 부딪히고 토론하고 합의하는 과정을 거쳐 때로는 폭력적으로 때로는 민주적으로 선택됩니다. 우리가 규칙이라고 하는 것들은 선택이 허용되는 경계에 대한 합의를 의미합니다.

2017년 2월 6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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