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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창록 May 23. 2021

회의주의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회의주의자 관용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피론과 그의 추종자들처럼 어떤 종류의 지식이든 참된 지식이 과연 존재할  있을지 의심하는 사람 또는 어떤 명제든 그것의 참됨을 확신하기에 충분한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아주 심플하게 진리에 대한 태도로 분류하면, 진리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하면 절대주의, 진리가 상대적으로 정의된다고 하면 상대주의,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없다고 하면 회의주의입니다.


미국 과학잡지 중에 “Skeptic”이라는 제목의 잡지가 있습니다. 표방하는 가치는 “Promoting Science and Critical Thinking”입니다.  Skeptic 한국어판인 “Korea Skeptic” 한국에서 발간되고 있습니다. 제목에 걸맞게 매우 논쟁적인 주제들을 비판적인 시각으로 서로 Debate하며 다루고 있습니다.


회의하지 않으면 질문이 없으며, 질문하지 않으면 비판적일  없습니다. 사실에 대한 맞다 vs. 틀리다, 판단에 대한 옳다 vs. 그르다를  칼에 어떻게 결정지을  있겠습니다. 인간은 대부분 회의주의자이길 거부합니다. 불편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보통 회의함으로써 결정을 미루는 대신에 급하게 어느  하나를 그냥 선택합니다. Random 선택이면 인간의 모든 판단과 행동은 확률과 통계에 의해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선택에는 항상 Bias 걸려 있습니다. 종교, 이데올로기, 도그마, 무의식, 잠재의식 등등.


사실상 인간은 독립적인 판단을   없는 존재입니다. 매우 비합리적이고 편향성을 갖고 있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개입하는 모든 현상은 2 카오스입니다.


2종 카오스는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과거로부터 예측된 미래를 인간이 개입해서 Bias를 주기 때문에 예측과는 항상 다른 방향으로 틀어집니다. 이 2종 카오스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모두 주식으로 떼돈을 번 사람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일 시금치 가격은 성인군자도 맞추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는 까닭입니다.

과학을 하는 사람은 그래서 회의주의자입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Bias에 걸려 있는 주관을 배제하고 객관적으로 증명하려고 합니다. 어제 후배인 대학교수가 페이스북에서 명문을 남겼습니다. “과학자는 직업을 부르는 이름이 아니라 태도를 부르는 이름이다.”

 

2017년 8월 30일 독서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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