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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Oct 01. 2020

나를 사랑하기 어려운 날 읽기에 좋은 책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최근 일신상의 변화가 생겨 마음이 괴로운 나날들이 이어졌다. 다 지나고 난 뒤에 내 언행을 곱씹고 부끄러워하고 자책하느라 마음이 바빴다. 학교 다닐 때는 시험을 준비하며 괴로울 때 공지영 작가의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책을 들춰보곤 했다. 그러면 내가 나의 성적보다 더 큰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신이 이 세상에 딱 하나뿐인 존재를 너무 사랑해서 눈물을 흘리는 일화를 좋아했다. 




 

 첫 직장에서 힘들 때는 류시화 시인의 시집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반복해서 읽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꼭 직장이 내 세상의 전부인 것만 같아서 일이 안 풀리면 퇴근 후에도 계속 번잡한 내 세계를 달랠 길이 없었다. 그럴 때 시가 나를 위로해준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내 친구는 스트레스를 받을때 <코스모스>를 읽으면 광활한 우주에 비하여 우리 일상이 대단치 않게 느껴지므로 좋다고 했다. 




 

 이번에 내가 나를 위로하기 위하여 고른 책은 류시화 시인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였다. 짧은 꼭지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자기 전 몇 페이지를 읽으면 정신이 환기되고 마음이 안정되었다. 읽는 내내 이 따뜻한 책 덕분에 힘든 이 시기를 견딜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특별히 좋았던 문장들, 일상생활을 할 때에도 생각이 나서 나를 위로해주었던 구절들이 있어서 소개하고 싶다.





 여행은 여러 해 계속되는 것이 좋다
 그리하여 늙어서 그 섬에 도착하는 것이 더 나으니
 너는 길에서 얻은 모든 것들로 이미 풍요로워져
이타카가 너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 기대하지 않으리
 
                             - 그리스 시인 콘스탄틴 카바피의 시 <이타카>


 나는 줄곧 아주 조급해왔다. 내 손 사이로 쉽게 모든 것이 빠져나갈까봐, 한 발 잘못 내딛으면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이 엉클어질까봐. 그래서 내가 정해둔 목적지에 일찍 도달하지 못하면 어떡하나 늘 조바심을 냈고 그 목적지에 가는 동안 내 인생은 잠시 유예해두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 인생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고. 

 코로나19의 시대를 살고 있는 지금도 똑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아야겠다. 반려화분을 잘 가꾸고, 가끔은 꽃을 사고 가족과 함께 산책을 하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글을 쓰고.

 이 시의 다른 구절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큰 즐거움과 큰 기쁨을 안고 처음 본 항구로 들어가는 여름날 아침이 수없이 많기를". 





자신이 원치 않는 일들이 일어날 때마다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나는 나 자신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쏠 것인가?"

삶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어리석으면 더 고통스럽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는가는 그들의 카르마가 되지만, 그것에 대해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는 당신 자신의 카르마가 된다.'


 내가 그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스스로에게 계속 화살을 쏘고 괴롭히는. 과거를 곱씹느라 너무 많은 현재가 지나가버렸다. 실은 이것도 나 자신을 위한 행동이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 현명해지려고. 더 좋은 인생을 살아보려고 했던 건데. 그렇다고 하루하루를 후회로 가득 채우고 싶지는 않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이 지금 스스로에게 화살을 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고통을 행복으로 바꿀 수 있다고. 이것이 알아차림의 기적이라고 한다.

 나에게는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는가는 그들의 카르마가 되지만," 이 구절이 직장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나에게 이유없이 잔인한 사람들의 행동은 그저 그들의 카르마일 뿐이라고 나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 오해받는다. 계속해서 성장하고 변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봄마다 껍질을 벗고 새로운 옷을 입는 나무와 같다. 우리의 정신은 끊임없이 젊어지고, 더 커지고, 더 강해진다.

 과거보다 훨씬 강해지고 지혜로워진 당신 자신을, 또 상대방을 더이상 과거의 일로 비난하지 않기를. 우리는 그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니까.





 내 인생의 여정에 이 책이 함께할 수 있어서 고맙다.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은 틱낫한 스님의 <화 : 화가 풀리면 인생이 풀린다>와 류시화 시인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를 읽고 있다. 나에게 또 다른 위안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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