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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Oct 11. 2020

블루를 사랑하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책

<블루엣>, 매기 넬슨 저

 나는 이미 올해의 책이라고 생각되는 책을 한 권 읽고 있었다. 총 3부작이므로 2020년이 가기 전에 다 읽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그와중에 이 책을 만났고 푹 빠져버렸다. 책의 이름은 <블루엣>. 부제는 "파란색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그 240편의 연작 에세이>. 더도 덜도 말고 딱 240편이다. 책 겉표지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불포럼이 선정한 지난 20년간 출간된 최고의 책 10". 읽는 내내 아무렴, 당연히 그랬겠지 생각했다.





 이 책이 무척 마음에 들었던 것은 내용과 형식 모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참신하고 뛰어났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넘길 페이지가 줄어드는 것이 가슴 아팠다. 나처럼 색에 대한 선호가 불분명하지 않은 사람에게라도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특히 여성 독자에게는. 





 책을 읽다가 얼른 저자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아쉽게도 이 책 외에는 번역본이 없다. 그러나 매기 넬슨의 첫 책을 이렇게 잘 뽑은 출판사에게는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블루엣>은 얇은 파란색의 책이다. 아주 많은 파란색 중에 특별히 잘 선정된 파란색이라고 생각한다. 가을 하늘의 파란색도, 우주에서 바라본 영롱한 지구의 색도 아닌 "블루엣"이라는 단어와 딱 잘 어울리는 그런 파랑. 나는 이 책을 읽기 전부터 이미 사랑에 빠져있었다. 한 마디로 <블루엣>을 요약하자면, 블루에 바치는 절절한 사랑고백이라고 말하고 싶다.





 오로지 한 색채를 사랑하는 마음에 책을 한 권 쓸 수 있다니. 그 많은 이야깃거리는, 그 큰 애정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궁금했다. 내게 파란색은,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오빠가 좋아하는 색깔이었으며(당시에 이건 매우 중요한 정보였다), 지금은 보고서 작성할 때 강조하기 위해 선택하는 "쨍한 파란색"으로서의 의미만 있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내게 파란색은 너무 차갑고 멀게 느껴져서 한 번도 마음에 깊게 품은 적이 없었다.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떤 이유로 이 차가운 색깔을 좋아하게 되었을지 늘 의문이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점차 저자의 블루에 대한 사랑이 내 마음을 파랗게 물들였다. 그 사랑을 이해할 수 있을 것처럼 느껴졌다. 어떤 이유로 긴 역사 속에서 블루에 매혹되는 사람들이 있어왔던 것인지.





 다음은 책을 읽으면서 특히 좋았던 구절들이다. 참, 이 책은 굉장히 짧은 240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으나, 순서대로 읽는 것이 좋다. 따라서 이 구절들을 발췌하는 순간 책 속에서 파랗게 빛났던 그 구절들이 빛을 잃을까봐 조금 조심스럽다. 





79. 블루를 사랑한다고 일평생 블루만의 세상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삶은 구슬을 꿰어 만든 목걸이처럼 알알이 엮인 다채로운 기분의 연속이고, 차례차례 하나씩 헤쳐나가다보면 알알의 렌즈가 세상을 각자의 색깔로 칠하고 오로지 그 렌즈로 초점을 맞춰야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여준다." 에머슨의 글이다. 색을 막론하고 하나의 구슬 속에 갇혀버린다면 치명적일 것이다.



157.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 부분 : 하늘의 파란색은 그 너머 텅 빈 우주 공간의 어둠에 달려 있다는 것. 한 광학 논문의 표현을 빌리면 "어떤 행성의 대기라도 우주의 암흑을 바탕으로 태양과 같은 항성의 빛을 비추면 파란색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 경우 블루는 허공과 불이 만들어내는 황홀한 우연 같은 것이라 하겠다.


203. 80년대에 처음 마약이 등장했을 때 떠돌던 온갖 괴담들을 기억한다. 딱 한 번만 피우면 그 믿을 수 없는 쾌감의 기억이 영원히 몸 안에 남아 약 없이는 만족할 수가 없게 된다고.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전혀 모르지만, 솔직히 나는 이 말이 무서워서 마약에 손도 대지 않았다. 그 후로, 같은 원칙이 다른 영역에도 적용될까 궁금해질 때가 간간이 있다. 예를 들어서, 특별히 놀라운 채도의 블루를 보게 된다면, 그저 보고 느꼈다는 사실만으로, 이전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달라질까? 이런 경우, 언제, 어떻게 거부해야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회복하는 방법은 또 어떻게 알까?



239. 하지만 이제 당신은 사랑이 위안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시몬 베유가 그러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위안이 아니다." 베유는 이렇게 썼다. "사랑은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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