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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7. 2020

그때 그 시절의 책, 그리고 음식

<생강빵과 진저브레드>, 김지현 저


 추천을 통해서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또 읽게 되었다. 전자책으로 읽었기 때문에 예쁘다는 책의 실물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부끄럽지만 이 책에서 다룬 대부분의 책을 나는 완독한 적이 없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책벌레였는데, 도대체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자랐단 말인가?! 그럼에도 이 책을 읽는 내내 꽤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나도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식들(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더 맛있어보이는)에 완전히 매혹되곤 했기 때문이다. 매일 집에서 먹는 평범한 밥에 평범한 반찬들과 책 속의 주인공들이 먹는 음식은 너무나도 달라보였다. 분명 특별한 부자도 아닌데도 만찬처럼 챙겨먹는 게 그렇게 부러웠다. 특히 케이크를 얼마나 자주 먹던지. 내가 예상치 못했던 것은, 음식 외에도 이 책을 통해서 새로운 관점과 위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의 구절들에서였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어른들이 내 주위에 그어놓은 한계를 넘어 종횡무진 활약했다.





 내가 아동자료실에서 종합자료실로 넘어간 적이 언제던가? 중학생? 초등학교 고학년? 기억나지 않지만, 꽤 이른 시절부터 성인 대상으로 나왔을 법한 책을 읽은 건 분명하다. 중학생일 때 종합자료실에서 책을 대출하던 남자 어른한테 아직 어리니 나이에 맞는 걸 읽으라며 한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웃긴 건 하필이면 동화 같은 책을 빌리는 날에 그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엄청 화가 난 채로 집에 와서 불평 불만을 터뜨렸는데, 늘 그랬든이 나의 부모님은 어떤 공감도 표하지 않았다. 무조건 나에게 뭐라고 한 어른의 편이었다. 그래도 고집이 세고 대견한 나답게, 나는 아직도 그 어른이 나한테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는 읽고 싶은 책을 읽을 자유가 있다는걸 나는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나를 부르는 책을 시기에 맞게 집어들었으니까. 내가 책을 찾는 것이 아니라, 책이 나를 찾는다. 나는 가장 적합한 시기에 가장 적합한 책을 "만난다".






 나는 아주 진지하고 고민이 많은 어린아이였다. 그래서 남들의 호감을 별로 사지 못했던 건지도 모른다. 설령 누가 호감을 가졌더래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할 게 뻔한 그런 성격이긴 했다. 다음의 구절은 정확히 내 어린 시절을 설명한다. 나는 정서적 유기 상태에서 자랐기 때문에 나만의 세상에 깊게 몰두했다. 그래서 풍부한 내면 세계를 가질 수 있었지만, 당시 나는 아주 많이 외로웠고, 어깨에는 많은 짐을 지고 있었다. 나와 같은 아이가 있어서 그때 내 마음의 상태를 표현된 언어로 볼 수 있다는 게 마음이 너무 아프기도, 위로가 되기도 한다. 




메리 역시 자신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나이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기 마련이다. 전염병이 얼마나 무서운지, 어린 나이에 세상에 혼자 남는 것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어른들이 이런 식으로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얼마나 부당한 처사인지도 모른다. 그저 이유도 모른 채 화가 나고, 무엇이 무서운지도 모르면서 두려워하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외로움이라는 것도 모른 채 그 외로움과 두려움, 분노에서 자신을 보호하려고 혼자만의 세상에 골몰할 뿐이다.






 이 책을 통틀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다음의 구절이다.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안식년을 가졌으면 어땠을까 가끔 생각한다. 그때는 물론 경주마처럼 달릴 줄만 알았기에 실현 붉가능한 생각이지만, 그때의 내게는 휴식이 너무나 절실했다. 물론, 적절한 그때에 휴식을 취하지 못하여 아주 많이 지쳐있는 지금의 나에게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마음에 푹 와닿았다. 잠시 쉬어가는 시간. 이런 부활의 시간에, 어떤 음식으로 나를 위로할까? (이 책에는 당연하지만 요리하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요리를 매우 귀찮아하는 (모든 과정은 건너뛰고 싶다!) 나로서는 그런 태도가 삶을 풍요롭게 영위할 줄 아는, 1인분을 하는 어른같이 보였다.)  일단, 퇴근하면 닭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만 인생이라는 길고 험난한 여정을 나아가다 잠시 멈춰 옛것을 털어내고 사람들을 용서하고 새로운 것에 마음을 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 시간이 한 해에 한 번은 있어야 다시 힘을 내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옛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또 그런 부활의 시간에는 뭔가 맛있는 음식이 필요하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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