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은 Dec 05. 2020

좋은 시선을 가진 사람

당신은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나요?

"언니 눈에 제가 이토록 좋게 비쳤다는 것은, 제가 좋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언니가 그만큼 좋은 시선을 가지고 있는 거라고 저는 읽혔어요."

   - <여사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임경선과 요조 저 





 그러니까 그 아이가 다시 생각난 건 내 직장상사 때문이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의 눈 때문이었는데, 사람을 볼 때 꼭 빛나는 사람을 보는 듯한 눈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시각적인 기능 문제 탓에 조금 눈이 부신가 의문을 품었었는데, 그와 어느새 2년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되었다. 그는 사람의 좋은 부분을 찾아내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신과 좋은 관계에 있든 그렇지 않든, 때때로 그에 대한 불만이 피어오르든 그렇지 않든.





 그는 자연스럽게 비슷한 마법을 가지고 있던 내 고등학교 친구를 연상시켰다. 나는 시골의 아주 작은 학교에서 자라난 탓에 그 아이를 처음 보았을 때 조금 놀랐는데, 늘 얼굴에서 행복의 빛이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듯한 모습이 인상적인 친구였다. 합반 수업 탓에 여러 번 마주치며 친해졌던 우리는 여러모로 달랐지만, 가장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것은 바로 세상을 보는 눈이었다.





 친구는 너무 세상을 장밋빛으로만 보는 탓에 사람을 꿰뚫어보는 눈이 부족한 것처럼 느껴졌었다. 내게는 가까워지기 전부터 선명하게 보이던 이들의 내면에 숨겨진 악의를 조금도 가늠하지 못하고 크게 상처받은 친구를 위로할 적이 여러 번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나갈까 걱정이 되면서도 나는 대부분의 친구들로부터 애정을 받는 그 아이의 태도를 부러워하게 되었다. 양지바른 곳을 걸어가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나도 친구의 부모님과 같은 사람들 밑에서 컸다면 하고 생각의 회로를 돌리기도 했었는데.





 그러나 신기한 것은 나에게는 끔찍한 모습만을 보여주었던 친구들이 친구 앞에서는 무슨 온순한 양이 된 양 돌변하는 태도를 계속해서 목격하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모든 것들이 지극히 당연했다. 자기를 좋은 사람으로 봐주는 다정한 태도를 지닌 이에게 당연히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지 않겠는가. 좋은 시선은 사람의 가장 좋은 면을 자석처럼 끄집어낸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온갖 사건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인 고등학교 시절이란 늘 그렇듯이, 그 사람이 그런 사람이었다고? 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여러 차례 있었을 때 나는 한 번도 놀란 적 없었으나(그런 사람이란 걸 너희들은 정말 몰랐니?) 나는 내 안에도 내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았던 어두운 면(만)을 너무나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삶의 많은 경이로움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을. 내가 주목하고 주로 생각하고 있는 것만을 내 삶으로 등장시키기 마련이니까.





 그러니까 한참 시간이 지난 지금에야 그때의 내 경험을 지금에야 온전히 이해하고 나를 반추해보는 것은, 내 삶을 바꾸는 마법 같은 힘은 기다리거나 어떤 운에 의해서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기간 돌고 돌아 경험으로 이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삶과 그 삶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애정하는 태도, 그것은 나를 더 연약하게 하지도 손해를 보게 하지도 않는다는 것. 말랑해진 마음이 내가 세상으로부터 더 상처입기 쉽게 만들지 몰라도, 그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것을.


매거진의 이전글 추운 겨울엔 사랑을 말하는 책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