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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Dec 13. 2020

<Jobs - Editor>를 읽고

오늘날의 직업과 소명의식에 대하여


 제 생각에 직업이란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 즉 말 그대로 무엇을 위해 하루하루를 사는지 하는 정체성에 가깝다고 봅니다. (생략) 근본적으로는 나 자신의 존재 의미에 가깝다고 저는 생각해요. (생략) 자신의 정체성이 일을 통해 뚜렷해진다면 의외로 돈을 버는 일은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 <Jobs - Editor>, 매거진 B 편집부 저



 다른 사람들의 업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다. 그래서 매거진 B가 Jobs 시리즈를 내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신났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읽고 싶어서 처음으로 읽은 편은 소설가 편이었다. 인터뷰에 나온 소설가들 중 내가 읽어본 작가는 정지돈과 정세랑 작가 뿐이었지만, 기대에 넘치게 좋았다. 당연하지만 같은 직업을 갖고도 작업 방식이나 임하는 태도, 가치관이 얼마나 각양강색인지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소설가 편이 인상깊었기 때문에 Jobs 시리즈를 하나씩 도장깨기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 다음으로 읽은 책이 바로 Jobs 시리즈 제 1편, 에디터 편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편은 소설가 편이지만, 후기를 쓴다면 에디터 편을 먼저 정리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인데, 일단은 매거진 B가 에디터 편을 처음으로 낸 이유와 연결되는 것 같다. 매거진 B에는 다른 직종보다도 에디터가 가장 많고, 그래서 자신을 돌아본다는 의미도 어느 정도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직업에 의미에 대하여 숙고하며 시작하는데, 나는 그 부분이 참 좋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결국 사람은 무언가를 해야만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경제적 여유가 있고 누군가가 아무것도 내게 뭘 요구하거나 바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결국 사람은 어떻게든 무언가가 되어 있어요. 산악인이 되어 있든 정리의 달인이 되어 있든, 뭐든 되어 있죠. 왜냐하면 그건 살아 있느냐, 죽어 있느냐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 <Jobs - Editor>, 매거진 B 편집부 저

 


 "살아 있느냐, 죽어 있느냐에 과한 이야기"라는 문장이 참 좋았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새벽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성과가 나올 수 없는 일을 하다가 상사의 폭언에 영혼까지 상해버렸던 나는 일과 삶을 좀 분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직업을 바꿨지만, 일과 삶은 어떻게든 분리가 안 되고 서로가 녹아드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 같다. 더 잘하고 싶고, 어떻게든 일에서 내 의미를 찾아보려고 애쓰게 되는 나를 마주하게 될 때마다 소진되지 않고 일하기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조건들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요즘 나의 직업과 일에 대해서 고민하며 관련된 책을 기회가 되는 대로 하나씩 읽고 있는데, 그 책들에서(아직 한줌이지만)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는 소명의식이다. 소명의식이라고 하면 갑자기 어르신한테 한 소리 듣는 것 같고, 먹고 사는 데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반발심이 조금 올라오지만, 이것이 내가 소진되지 않고 일하는 가장 첫번째 근본적인 조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우선 잘 알고, 내가 하는 일에서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여 찾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건 노력 없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노력으로 모두 해결된다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맥락으로서 그렇다.




 좋아하기 때문에 잘한다는 말도 일견 맞지만 그 이상으로, 좋아하려고 애를 쓰는 것도 저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고 하거나 ‘왜 나는 딱히 좋아하는 것도 없지?’라고 하며 자책하기도 합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물어봐요. “무엇을 좋아하려고 얼마나 노력해봤느냐고”요.

 무언가를 좋아하는 건 제 발로 걸어오는 게 아니고 그만큼 애정을 가지고 더 많이 더 세심하게 보려고 애써야 생기는 겁니다. 좋아하려고 노력하는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더 많이 보이게 되는 게 있어요. 남들과 똑같은 걸 봤는데 다른 게 보이는 거죠. 돌이켜 보면 제가 만났던 사람들 중 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자기 일을 더 좋아하기 위해서.


 - <Jobs - Editor>, 매거진 B 편집부 저





 그럴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책을 읽고 나니 에디터가 더욱 매력적인 직업으로 보였다. 시야를 끊임없이 열어두어서 자신의 삶의 폭을 계속 확장해나가야만 하는, 또 그럴 수 있는 직업. 어쩌면 건강하고 생기있는 삶을 위해서 모든 직업인들이 갖춰야 할 자세가 아닐까 싶었다. 바로 내가 내년의 모토로 삼고 있는 것. 바로 다음의 문장들이다.



당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네요. 거의 모든 것에 ‘노’라고 대답하지 않는 것. 두려워하지 않는 것. ‘



독자 수가 적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세계를 창조하는 게 중요해요.





 처음 취업 활동을 하고 직장을 잡을 무렵에는 조금했다. 얼른 사회에 (무너지지도 흔들리지도 않을) 내 자리를 마련해두고 마음을 좀 내려놓고 일하고 싶었다. 나는 언제야 내 확고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앤 타일러의 소설 <아마추어 매리지>가 생각났다. 모든 신혼 부부들이 결혼생활이 안정 궤도에 올라서는 대로 하나씩 빠져나가기 마련이라고 생각되는 가상의 아마추어 커플들의 행진에서 본인들은 언제야 벗어날 수 있을까 회의하던 부부는 결국 이혼하게 된다. 실은 삶이란 늘 아마추어같은 시행착오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일과 삶도 그와 비슷한 것 같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나를 찾고, 나를 알게 되고, 그래서 더 나다워질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터득해가는 것이라고. 그리고 매거진 B의 Jobs 시리즈는 진지한 사람들의 직업관을 알 수 있는 좋은 참고자료였다. 일과 삶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더더욱 권하고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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