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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Dec 13. 2020

<Jobs - 소설가>편을 읽고

이야기를 짓는 일에 대하여

  시작이 쓰고자 하는 욕망이라면, 끝은 각자가 구축한 시스템이 맺는 셈입니다. 훌륭한 창작물이 영감이나 취향의 마법으로 완성되는 것처럼 보일 때, 창작의 불꽃이 무엇을 동력 삼아 끝까지 타오르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입니다.




 어렸을 때 깜깜한 방에서 혼자 책 읽는 걸 좋아했다. 그때마다 엄마한테 눈 나빠진다고 혼났는데, 밝은 빛이 텍스트 속의 세계로 깊이 침잠하는 걸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게 싫었다. 또 내가 주로 읽는 책은 소설이었으므로, 공부도 아니고 남이 지어낸 이야기를 읽는 것은 무익할 뿐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엄마는 내가 늘 못마땅해보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내게 항변할 의지나 근거가 뚜렷하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늘 읽는 사람이었지만, 내가 안 읽는 사람보다 뚜렷하게 발달한 무언가가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소설이란 무엇일까, 그저 허구의 산물? 소설은 안 읽어도 아무 문제 없고, 소설을 읽는다고 (상상력이든 이해의 폭이든)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 같다. 그렇다면 시야를 조금 돌려서, 긴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들여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직조해내고 마는 소설가들이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읽는 사람으로서 나는 늘 그들에 대한 경외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작업 방식과 삶이 궁금했다. 그리고 <Jobs - Novelist>는 8명의 소설가들에 대한 인터뷰와 한 편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이 중에서 내가 읽어본 소설가는 (이전 독후감에서 2명으로 잘못 썼지만) 총 4명, 정지돈, 정세랑, 김연수, 마르크 레비 뿐이지만, 모두 인상깊고 멋진 인터뷰였다. 인터뷰는 늘 재밌지만 소설가들의 인터뷰는 특히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물론 화술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머릿속에서 이야기를 지어내고 마는 그 행위를 위해서는 스스로 써야만 하는 강력한 동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할아버지… 그게 진짜 사실이에요?” 그러면 할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진실만을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단다.”




 이야기 하면 생각나는 두 영화가 있다. <라이프 오브 파이>와 <빅 피쉬>. 진실을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바꾸어내는 일의 위대함에 대하여 생각한다. 이야기의 힘은 그런 데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났음에도, 비록 그 모든 것을 거쳐왔음에도 그 이후에 우리를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엄격한 진실에서 한 발 벗어나면, 더 넓고 원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이야기를 마음속에 품고 있고, 누구나 매일 이야기를 하지만, '발상'을 글로 적기 시작하여 하나의 완결된 형식으로 끝을 맺는 행위, 그리고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왔다. 그것은 분명 천재성이나 인내심, 지구력과는 별개의 것일 것 같다고. 그리고 내가 이 인터뷰집을 통해서 얻은 결론은, "내가 지어내는 이야기가 의미가 있다는 믿음"인 것 같다. 





 소설가의 삶을 지속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소설가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있다면 헌신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막을 수 없는 열정,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죠. 이 일은 훈련이기도 해요. 글을 쓰는 건 시간이 필요합니다. (생략) 글을 쓰는 일은 머릿속에 꽃이 필 수 있게 흘러가는대로 의식을 놓아두는 일이기도 합니다.




 <Jobs - Novelist>편을 읽으며, 매우 진지한 작가도 유쾌하다 못해 즐거움이 흘러 넘치는 작가도 있었지만,(물론 인터뷰에서 그들의 일면만을 잠깐 볼 수 있었을 뿐이겠지만) 그들 모두가 자신의 직업을 대단히 사랑하고, 또 의미있다고 믿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명 한 명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어떤 과정과 어려움을 거쳐왔는지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 밖이겠지만. 




 예전에 제가 작가가 된 과정을 짧은 기사 형태로 쓴 적이 있는데, 그 기사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썼어요. “나는 매일 질문한다. 이게 진짜 내 운명인지.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운명이 아닌 것에 내 인생을 거는 것이다.” 지금은 이 일이 제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글을 떠나지 않는 것, 끝내지 않는 것이 제 목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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