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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an 22. 2023

괜찮지 않은 어른들을 위한 따뜻하고 유쾌한 소설 추천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게일 허니먼 장편소설

 우리가 이 녹색과 후른색의 눈물 계곡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만큼 계속 존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아무리 요원해 보일지라도 언제나 변화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게일 허니먼 지음



 내가 장편소설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를 읽기 시작한 건 내가 괜찮지 않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꽁꽁 홀로 틀어박힌 삶을 살고 있는 외톨이 엘리너 올리펀트는 디자인 회사의 회계팀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우연한 계기로 간 콘서트에서 본 한 뮤지션에게 흠뻑 빠지고, 그래서 로맨스에 돌입하기 전 필요한 일들―이전에는 생각도 해본 적 없는 일들을 하나둘씩 시도해본다. 그와 동시에 같은 회사의 IT부서 레이먼드와 갑작스러운 사고로 쓰러진 늙은 남자 새미를 응급실에 데려가는 소동에 휘말리게 되고, 이를 계기로 천천히 우정을 쌓게 된다. 엘리너 올리펀트는 난생 처음 손톱을 가꾸고, 새로운 잠옷을 사고, 처음으로 장례식을 가고, 술집에서 술을 주문한다. 그러나 매주 수요일, 엘리너는 받아야 하는 전화가 있다. 그때마다 엘리너는 심적으로 무너지고, 매일 밤 들려오는 목소리에 보드카 없이는 잠들지 못한다. 그 전화는 교도소에 있는 엄마의 전화고, 목소리는 살려달라는 엄마의 목소리다.





 엘리너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엘리너에게는 하나도 쉽지 않다. 사람들은 왜 생각과 다른 말을 하는지, 왜 기본적인 예의도 안 지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누구 하나 옆을 지켜줄 친구도 가족도 없다. 그러나 당연히, 엘리너는 서서히 괜찮아진다. 삶이란 그런 거니까. 최악의 상황에서도 붙들고만 있다면, 반드시 탈출구는 보인다. 그리고 인간의 회복능력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너머에 있다. 물론, 아마 엘리너 혼자서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새로 사귄 헌신적인 친구 레이먼드가 곁을 지켰고, 보살펴줬다. 아마 레이먼드에게 같은 일이 생겼다면 엘리너 역시 그렇게 했을 것이다. 엘리너는 그녀의 엄마와 다른 사람이며, 엘리너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타인의 삶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니까. 책을 읽는 내내 엘리너가 나랑 얼마나 닮아있는지 부끄럽기도 놀랍기도 했다. 그래서 계속해서 읽어나갔던 것이다. 심지어 생뚱맞고 얼간이같은 남자에게 홀딱 반해서 온갖 미친 짓을 한 것마저 그렇다.





  이 소설이 내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건, 작가가 대학교 행정직으로 일하다가 마흔살이 되던 해 용기를 갖고 소설가로서의 출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학교 행정직, 이렇게 따분해보이는 직업이 또 있을까. 하지만 그렇게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또 내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은 이 작가가 가진 삶의 고통에 대한 이해력이었다. 그래서 삶은 더 살만하다.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하는 무게를 이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새미처럼 또 엘리처럼 우리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허약해져서 무너져내릴 때, 우리 곁에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때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충직한 친구이자, 무심하지 않은 이웃이 되고 싶다. 또 하나 더. 새롭고 낯설고 두렵고, 또 나 자신이 얼간이같아 보이는 경험들에 모조리 나를 밀어넣기로 하자. 나를 죽이는 것만 빼고.




이제 할일이 있었다. 과거가 줄곧 나를 피해 숨어 있었다. 혹은 내가 과거를 피해 숨어 살았다. 하지만 과거는 거기, 여전히 어둠 속에 잠복해 있었다. 지금은 그 안에 작은 빛을 비춰줄 때였다. 

 ― <엘리너 올리펀트는 완전 괜찮아>, 게일 허니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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