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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Dec 25. 2020

재능보다 빛나는 꾸준함으로

2021년을 준비하는 마음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서다.

- <부지런한 사랑>, 이슬아 저




 어릴 적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꿈을 고이 접어서 날려보내는 일에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의 말 한 마디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나이에 비해 느리다는 그의 말이며 그때의 날 보는 눈빛은 내 자존심에도 마음에도 크고 시퍼런 멍을 남겼다. 난 조금 다른 줄 알았는데, 그의 말은 곧 내게 자격이 없다는 말로 들렸다. 너, 학원의 다른 아이들보다 특별할 것 없다는 말. 그러니까, 너는 안 된다는 말.





 그때 내가 아는 선에서 재능이 없다는 말은 이쪽 길은 너에게 막다른 길이니까 다른 길을 찾아가라는 표지판이과도 같았다.





 어렸을 때의 나는 매일매일의 성실함보다도 타고난 재능이 더 빛나보였으니까. 묵묵한 노력은 그다지 멋도 없어 보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였다. 그래서 열심히 하면서도 실은 열심히 안 하는 척, 조금의 노력으로 큰 성과를 내는 아이인 것처럼 보이고 싶었다. 





  무엇이든 처음부터 뛰어난 재능을 발하는 어떤 분야를 찾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태어나고 자란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본인만이 가진 재능을 발굴하고 계발하는 것을 적극 장려하던 재능 주의 시대였던 것 같다. 한참 각광받던 마시멜로 이야기도, "즐거움을 지연시킬 능력을 타고났느냐"가 중요한 화두였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지속 가능한 꾸준함이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라는 걸 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나의 매일매일이, 오로지 나의 행동만이 미래의 내 모습을 조금씩 구체적으로 빚어나간다는 걸. 





 이제는 내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내가 정한 단계를 밟아가며 나를 연습시키는 일에 바쁘다. 양귀자 작가의 모순에 나오는 구절,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에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가 내게는 지금 이 시기에 찾아오고 만 것이다. 





 나의 마음이 재능보다도 꾸준함으로 기울게 된 또 한 가지 이유가 있다.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으면서, 빛나는 재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사람 뒤에는 늘 무서운 인고의 시간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명 처음에는 평범해보였던 성실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빛을 발하게 되는 것도 보았다. 





 2021년은 막강한 꾸준함으로 빛나는 사람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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