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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Dec 27. 2020

섬세하고 얇은 프랑스 소설이 읽고 싶을 때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모데라토 칸타빌레>를 읽고

 좀더 천천히 쉼표를 지켜 연주했다. 아이는 음악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그 애가 원한 것도, 작정한 것도 아니었건만 손가락 사이로 흘러넘친 곡조는 모르는 사이 온 세상으로 한번 더 퍼져나가 낯선 가슴을 적시고 마음을 빼앗았다.

 - <모데라토 칸타빌레>, 마르그리트 뒤라스 저



 


 내가 정말 좋아하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1>은 읽는 내내 빵집의 갓 구운 빵내음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디아빌레의 소나티네가 귓가에 울려퍼지는 것 같았다. 주인공 안 바드레드의 아이가 피아노 교습을 받으며 시작하기 때문이다. 결코 평화롭지 않은 이 교습 시간은 한 여자의 비명소리로 다시금 혼란에 빠지는데, 교습이 끝난 후 안 바드레드는 근처의 카페에서 소리지른 여성이 그의 애인으로 추정되는 남자로부터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엄청나게 모인 군중을 해치고 살해 현장을 본 안 바드레드는 용의자인 남성이 피범벅인 여성을 껴안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날 이후 안 바드레드는 거의 매일같이 아이를 데리고 카페를 가서 역시 그 사건을 봤던 남자와 사건의 정황에 대하여 상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이 책의 주 내용이다.

 


 



그 여자는 일어났다.

"당신이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쇼뱅이 말했다.

 "그대로 되었어요." 안 데바레드가 말했다.





 이 책에는 어디에도 구체적인 감정 묘사나 정황 설명이 없다. 중반부까지는 도대체 이 안 바드레드와 이 남자의 대화가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 건지, 이들은 언제 나도 모르게 감정의 교류를 시작한 건지 궁금했고, 그 이후에는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한 채로 읽었다. 어떻게 보면 독자에게 불친절한 이 책을 끝까지 읽어내려간 것은 첫째로 굉장히 얇기 때문이고, 둘째로는 어떻게 끝을 맺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아틀란티스>를 연상시키는 이 작품의 분위기가 좋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피아노 교습 덕에 자꾸 연상되는 피아노 선율이며, 반복적으로 나오는 "모데라토 칸타빌레", 보통 빠르기로 노래하듯이라는 말, 그리고 활짝 핀 목련 꽃 등 감각을 자극하는 표현들이 그 분위기 형성에 한 몫을 했던 것 같다. 





 가장 좋았던 장면은, 안 바드레드가 술에 취해 늦은 채로 만찬에 등장하여 사람들에게 섞여들지 못하고, 날선 시선을 받는 저녁 자리를 묘사한 부분이었다. 기성복 같은 사람들 속에서 유일하게 감각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안 바드레드가 얼마나 혼란스럽고 갑갑했을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아빠 손에 이끌려 가던 교회에서, 특히 저녁 시간이면 그런 기분을 느끼곤 했다. 판에 박힌 듯 똑같은 사람들과 똑같은 사고방식, 그 속에서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은, 혼자 따돌려지는 기분.





 숨겨놓는 것 없이 낱낱히 드러내는 아니 에르노의 글 이후로, 자전적인 경험을 에두르고 숨겨서 보여주는 이 글을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그러나 이것은 이것대로, 또 그것은 그것대로 모두 좋았다. 이 책을 고른 것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책이 요즘 서점에서 많이 보여서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다음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글>을 읽고 싶다. 그리고 또 괜찮으면 <연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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