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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an 24. 2021

영화 <소울>을 보고

 얼마만의 영화관 나들인지. 사람이 많을까봐 걱정하면서 집 바로 앞의 영화관으로 갔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지 않았고, 조용히 영화에만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혹시 <소울>을 볼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영화관에서 봐야만 더 즐길 수 있는 영화냐고 묻는다면, 영화 음악이 좋기는 했으나, 아닌 것 같다. 다만, 영화를 보며 어린이들보다도 너무나 어른들을 위한 영화라고 느끼긴 했다.




 본격적인 영화 시작 전에는 5분 정도의 짧은 단편 영화가 나온다. 귀로 눈을 가리며 우는 토끼가 얼마나 귀여운지! 다 괜찮으니까 굴 좀 그만 파고 들어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단편 영화가 끝났던 시점에 이미 나는 영화관에 온 소기의 목적(하루치의 귀여움 할당량 충족)을 달성했으므로 흡족했다.




 이 영화는 음악이 곧 삶의 이유이고 목적인 중년의 남성 조 가드너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는 중학교 밴드 교사로 일하다가 드디어 정규직 자리를 제안받게 된다. 이에 그의 엄마는 뛸 듯이 기뻐하지만, 조 가드너는 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다. 그의 가슴이 시키는대로 훌륭한 밴드에서 재즈를 연주하는 것. 그러나 그는 마침내 꿈에 그리던 무대에 설 기회를 받은 그날 사고사를 당하고 만다. 




  머나먼 저편을 향하는 길목에 서게 된 조 가드너는 "내 바지 어디 갔어?"를 외치는 영혼들 속에서 다시 지구로 돌아가야만 한다고 몸부림치다가 얼떨결에 태어나기 전의 영혼들을 준비시키는 멘토 행세를 하게 된다. 꿈을 포기하지 못한 그는, 수천년의 시간 동안 지구통행증을 완성하지 못한 22라는 영혼과 거래를 약속한다. 바로, 22의 지구통행증을 완성시키면 그때 그가 지구로 돌아가는 것으로.




  이 영화는 그동안 꼭 가슴 속의 불꽃을 찾아내고, 현실의 차가운 벽이 가로막더라도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 꿈을 좇으라고 말하던 기존의 영화들과는 어떻게 보면 정반대의 메세지를 던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게 이 영화는, 늘 냉소적인 척했으나 실은 "I'm not good enough"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하던 22에 관한 이야기였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순간 스스로 이런 이야기를 스스로에게 들려주는가. 있지도 않는 이상한 기준―불꽃 튀는 무언가, 나만의 천부적인 삶의 목적을 찾아야만 한다는 강박―을 만들어내고 자신을 괴롭히면서.  





자신의 삶의 목적은 오로지 음악뿐이었다고 말하는 조 가드너에게 제리는 답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이렇게 말한다.

 "Mentors.. So basic!" 




 나를 살아가게 하는 단 하나의 이유와 꿈으로 삶을 일축해버릴 때, 삶이 얼마나 납작해지는지 이 영화는 아름다운 이야기와 음악을 통해 보여준다. 요청한 적도 없는 이 삶을 체험한다는 게 실은 한 순간 한 순간―바람에 잎사귀가 날려서 내 손바닥 안에 떨어지는 순간, 우연히 길거리 연주자를 만나 감명받은 순간 등― 그 자체로 경이롭고도 기념할 만한지.




 나는 비록 "훌륭한" 사람들에 비해 나만의 특별한 무엇(재능, 불꽃, 삶의 목적 등)을 찾지 못한 것 같고, 그래서 내가 뭔가 이상한지, 덜 떨어진 건 아닌지, "충분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그 자체로 삶을 즐기라는 위로의 메세지를 전하고, 삶의 목적이란 곧 그의 꿈을 성취하는 데에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에게는 힘을 조금 빼고 삶을 즐겨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실은 요즘의 내게. 

 한 살을 더 먹으니 감회가 새로워서, 내 삶, 이대로는 정말 안 되겠다고,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든 이들에게 조 가드너와 같은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좋겠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어쩌면, 조 가드너의 마지막 대답이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했던 가장 중요한 메세지가 아닌가 싶다. 

 "I'm just gonna live every mo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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