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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Feb 14. 2021

나는 지금 어떤 길 위에 서있는지

<나는 나>, 캐럴 피어슨 저

"지금의 당신 모습은 당신의 여행 중 한 단계일 뿐이에요. 언제까지나 이 모습으로 있지는 않을 거예요.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당신이 아니에요. 지금 당신은 여행 중인 영웅이에요."

 - <나는 나>, 캐럴 피어슨 저





 마음을 녹이는 삽화와 그림같은 문장으로 내 마음을 지난 2주간 촉촉히 위로해준 책 <나는 나>는 칼 융의 원형 연구에 평생을 바친 캐럴 피어슨이 집필하였으며, 류시화 시인이 번역했다. 나는 심리적 원형이라는 것, 게다가 원형연구소(CASA)라는 것도 이번에 처음 접해보아서 좀 생소하고 낯설던 참이었다. 어떻게서인지 계속 내 눈에 들어와 언젠가는 읽어야지 생각만 해놓았는데, 근래에 들어서야 더이상 미뤄둘 수 없다는 강한 추동이 끓어올라서 읽기 시작했는데, 딱 적절한 순간에 만나게됐구나, 생각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보석같아서 어서 다음 장도 읽고 싶은 마음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문장이 너무 좋은 나머지 한없이 머무르고 싶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느라 그다지 두껍지도 않은 이 책을 읽는데 그토록 오래 걸렸다. 읽다가도 간직하고 싶은 문장을 만나 수시로 멈추고 필사하다 보면 어느새 잠이 스스르 몰려오곤 했다.





 저자 캐럴 피어슨은 그의 대표적 저서인 이 책을 통해서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수많은 심리적 원형 중 대표적인 여섯 가지―고아, 방랑자, 전사, 이타주의자, 순수주의자, 마법사―를 소개하며, 인간의 영혼이 필연적으로 떠나기 마련인 여행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삶의 목적이면서, 자기 자신을 찾고자 내면으로 더욱 깊숙히 스며드는 그 여행에 대하여.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영웅의 여행에는 어느 정도 위험이 기다리고 있다.
 에고는 필사적으로 안전을 원한다. 모험 없이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시련 없이는 깊어질 수 없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고 있는,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이야기의 구조를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의 내면에 깊게 뿌리내린 심리적 원형에서 비롯된다. 여섯 가지나 된다니, 처음에 혼란스러웠다는 이 심리적 원형은 책을 읽어나감에 따라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해되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 안의 고아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고통을 받았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살아남았는가?'이다. 이 고아원형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회복력이다.

 방랑자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탈출했는가?' 혹은 '어떻게 나 자신의 길을 발견했는가?'이다. 방랑자 원형이 주는 선물은 독립심이다.

 전사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목표를 이루었는가?'혹은 '어떻게 적을 이겼는가?'이다. 전사 원형이 주는 선물은 용기이다.

 이타주의자의 이야기 구조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베풀었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나를 희생했는가?'이다. 이타주의자 원형이 주는 선물은 연민심이다.

 순수주의자의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행복을 발견했는가?' 혹은 '내가 어떻게 약속의 땅을 찾았는가?'이다. 순수주의자 원형의 선물은 신념이다.

 그리고 우리 안의 마법사가 만드는 이야기 구조는 '내가 어떻게 나의 세계를 바꾸었는가?'이다. 마법사 원형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은 힘이다.





 명상을 배울 때 선생님이 재차 강조하셨던 것이 있다. 사람이 가진 여러 성향, 성격, 삶의 방식은 그 자체로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삶에서 맞닦뜨리게 되는 다양한 상황과 맥락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고수해왔던 그 방식으로는 더이상 나아갈 수 없는 때가 온다고. 그때가 되면 적절한 삶의 방식을 다시 개발해야만 한다. 이처럼, 심리적 원형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원형이 지닌 선물과 힘이 있지만, 이 중 한 두가지에 고착되었을 때, 삶은 균형을 잃고 우리는 헤매게 된다.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원형이 깨어날 때까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특정한 심리적 원형을 강하게 드러내는 내 주위의 사람들―전사 원형을 발휘하던 예전 회사의 상사나, 이타주의자 원형을 발휘하는 나의 엄마―이 생각났고, 내가 거쳐온 인생의 길에서 머물러있던 원형들―심리적 고아였던 유년시절과 방랑자의 길을 떠나게 된 청소년 시절―이 생각나며 부끄러워지기도, 연민심이 생기고 비로소 그들과 그때의 내 자신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이 또 좋았던 점은, 여성이 쓴 책이어서 가지는 장점일 수 있겠는데, 여성이 삶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들에 대하여 놓치지 않고 기술한다는 것이다. 또한, 수많은 양서들에서 발췌한이야기들을 적절히 곁들여서 이해가 더욱 잘 되도록, 또 흥미를 놓치지 않을 수 있도록 돕는다. 이중 하나느 수잔 그리핀이 저술한 <여성과 자연>에 대한 이야기인데, 너무 좋아서 원서를 구해서 읽을까 고민 중일 정도이다.





 자신의 본모습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 헤매고 있는 영웅들에게, 또 삶에서 갑작스럽게 마주하게 된 벽 앞에서 어떻게 할지 몰라 방황하고 있는 여행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어쩌면 지금 당신을 곤경에 빠뜨린 당신의 모습은, 그동안 당신을 살렸고 지금 여기까지 이끌어주었을 것이므로 조금도 낙담하지 말라고. 앞으로도 나아갈 당신만의 여행길에서 당신은 절대 혼자가 아닐 테니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만족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했든 너 자신의 신화를 펼쳐라. 복잡하게 설명하려 하지 말고 누구나 그 여정을 이해할 수 있도록. 너에게 모든 것이 열려 있으니, 걸음을 옮겨라. 두 다리가 지쳐 무거워지면 너의 날개가 자라나 너를 들어올리는 순간이 올 것이니.

 - 잘랄루딘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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