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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Mar 21. 2021

김정연 작가님의 <혼자를 기르는 법>을 읽고

나를 돌보고 나와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하여

 김정연 작가님의 <이세린 가이드>가 출시되어 그제야 작가님의 전작인 <혼자를 기르는 법>이 궁금해졌다. 마침 몸이 안 좋아서 책도 읽기 어려웠던 참에(실은 만화도 읽기 어려웠지만) 잠깐 컨디션이 회복되었을 때 얼른 <혼자를 기르는 법> 1, 2권을 구해왔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유난히 활자가 잘 안 읽힐 때 좋은 방법은 팟캐스트를 듣거나(추천하고 싶은 팟캐스트가 너무나 많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에 비해 쓸 거리는 얼마나 많은지.) 만화책을 읽는 것. 이때 화면으로 보는 만화는 추천하지 않는다. 책으로 된 만화를 술술 읽는 것이 활자로 넘어가는 데 좋은 연결다리가 된다.





 <혼자를 기르는 법>은 귀한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이시다'라는 이름을 갖게 된 주인공이 어렵게 얻어낸 독립을 하며 홀로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그 삶은 그렇게 녹록치만도 않고, 또 그렇게 혼자도 아니다. 왜냐하면 시다는 쥐윤발이라는 햄스터를 애지중지 기르고 있기 때문이다. 햄스터를 기르다보니 친해지게 된 이웃사촌 '오해수'는 별의별 특이한 도마뱀 등을 기르는데, 읽으면서 왜 혼자를 기르는 법인데 주인공 시다는 혼자 살지 않는지 의아했다. 곧, 윤발이도 혼자이니 윤발이를 기르는 법을 배우는 것 또한 혼자를 기르는 법이며, 윤발이를 기르는 과정 또한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내 식대로 이해했다.





 성인이 되면 더더욱 필요한 것이 '혼자를 기르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새삼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돈을 모으는 법, 직장생활을 '잘' 하는 법, 잘 버티는 법, 인간관계를 잘 관리하는 법 등등은 배우면서 정작 중요한 건 놓치고 있지 않았나 싶다. 실은, 끔찍하게 독립하고 싶었고 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무리하다가 결국 본가로 도망치듯 돌아온 나로서는 책의 마지막에 시다가 독립생활을 포기하지 않을까 조금 염려했었다. 그런 결말은 아니었고,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것보다 가장 훌륭한 이 책의 결말이 마음에 쏙 들었다. 혼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그런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달걀처럼 완벽한 타원형의 얼굴을 한 사람들. 복잡하지 않아 귀여운 그림체와 (홀로 서울살이하는)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작가님 특유의 유머에 몸이 끔찍하게 아픈 와중에도 깔깔거리며 읽었다. 조금씩 읽고 덮을 수밖에 없었지만, 여섯 컷의 구성과 짧은 꼭지들에 술술 두꺼운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나는 책을 통해서 무언가를 얻고자 하려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 책을 왜 끝까지 읽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이 되지 않으면 완독하지 않고 치워버리곤 했다.






 그렇다면 내게는 <혼자를 기르는 법>을 끝까지 읽게 한 힘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나는 무언가를 얻고자 했던 것 같다. 혼자 잘 살아가는 방법 같은 것. 혼자를 잘 기르지 못했던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나 말고 다른 직장인은 어떻게 홀로 버티는지를 엿보고자 했고, 내가 잘 해내지 못했던 것은 무엇이었나 알아내고 싶었다.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는 아주 가까이 붙어선 타인이 아니고서는, 심지어는 자신도 잘 모르는 고통을 묵묵히 참아내며 서있는 어른들이 등장한다. 독자이므로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그들은 어른보다는 아이같고, 그래서 세상의 풍파로부터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나는 <혼자를 기르는 법> 2권부터 잠깐씩 등장하는 시다의 동생 시리를 보면 막 마음이 저렸다. 동생이라는 역할 때문이었을까, 웃고 있는 그 얼굴 속에 남들 모르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많은 짐은 지고 있었는지 걱정이 되고. 어른이 된다는 건 하나둘씩 내 속에 나만 알도록 묻어두는 것이 늘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친절하지도 않으면서 시다보다도 시리에 가까워서, 시다와 해수의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이 내게는 의미있었다. 각자의 짐을 짊어지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서로를 지켜봐주는 일. 혼자를 기르는 법은 그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법을 배우는 일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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