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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Feb 28. 2021

연말연'시'에는 '시'집을

내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달같은 책

너의 조용한 빛은 눈에서 반짝이리니,
술이나 열정으로 이글거리는 눈을 가진 자들은 이렇게 물으리라.
"저 여자의 내면에 있는 불은 어떤 것이기에
그녀는 그슬리지도, 연소되지도 않는 걸까?"

 ― <예술>,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저
     (세계여성시인선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에 수록)



 2021년의 첫 두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이제는 설도 지났으니 핑계도 못 대게 되었고, 오롯이 열 달만이 남게 되었네요. 여러분의 첫 두 달은 작년과 얼마나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지금의 시국에 이제는 완전히 적응하여, 깜빡하고 마스크를 안 쓰고 밖에 나가는 일 따윈 없게 되었어요. 요즘은 작년 일기를 읽는 즐거움에 푹 빠졌습니다. 그때 나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면서, 또 그 사이 나는 꽤 변했다는 걸 알아채고 스스로를 대견해하고 있답니다.





 외부세계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의 일상을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힘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늘 견고했으면 싶은 우리의 마음에도 늘 빈 틈은 생기고, 가장 연약한 부분이 무너져서 때로는 보수도 해야 하기에 우리는 시집을 찾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어떤 교수님께서 시집을 사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어보셨어요. 그 순간 저는, "네"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없는 것이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웠어요. 그 부끄러움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스스로의 영혼을 돌보는 습관을 채 들이지 못한,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막상 시집을 읽으려고 서점에서 또 도서관에서 시집 코너를 기웃거리다 보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막막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온통 어려운 말이 정신과 내 마음을 혼란스럽게 해 내가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은 맞는지, 초심자는 어떤 시부터 읽기 시작하는 것이 좋을지, 꼭 미술관에 몇 번 안 가본 사람처럼 어딘가 주춤거리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시집을 읽고 싶지만 어떤 것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께 한 가지 시선집을 추천하려고 합니다. 바로, 세계 여성 시인선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입니다. 안타깝게도 품절되었으나, 중고서점이나 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는 책입니다!





 제목부터 완벽한 이 책은,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여성들이 그들의 삶으로 지은 뜨거운 시들이 아낌없이 담겨있습니다. 스무명이 넘는 시인들의 사진 또는 초상화와 함께 그가 집필한 여러 편의 시가 실려 있는 구성으로 이루어져있어, 각 개인의 삶과 정신을 상상해보며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한국 시인들이 적지 않게 수록되어 있는 점이 좋았습니다. 참,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라는 특별한 제목의 유래는 책 맨 앞부분의 수록된 다음의 구절을 통해서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슬픔에게 언어를 주오
말하지 않는 큰 슬픔은 무거운 가슴에게 무너지라고 속삭인다오

― 셰익스피어 <맥베스>, 4막 3장




  저는 이 시집을 한정원 시인의 <시와 산책>에서 보고 알게 되었는데요, 바로 이 글의 맨 앞에 인용한 부분 때문에 바로 인터넷에서 찾아서 주문해버렸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시와 산책>에는 보석같은 시들이 많이 인용되었으며, 한정원 시인의 감상도 함께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빈곤함을 느낄 때, 내 슬픔에 언어를 주고 싶을 때, 오래전에 살다 간 여성들의 지혜, 힘, 용기가 필요할 때, 그들의 발자취를 따르고 싶을 때 펼처서 읽곤 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저는 이 시집을 다시 처음부터 읽으며 깨달은 점이 있습니다. 제가 처음 읽었을 때와 전혀 다른 마음과 시선으로 감상하고 있다는 것을요. 그동안 제가 만난 사람과 겪어낸 시간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의 감정상태―보고싶은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가 반영되어 한 구절 한 구절이 하나의 "시"로 읽히지 않고, 제 마음을 그대로 비추어낸 거울 같이 읽힙니다. 지금 여러분이 시집을 읽는다면(꼭 이 시집이 아니더라도), 그 시집은 어떤 마음을 비춰보일까요? 





여러분의 가슴이 무너지는 일 없도록, 지금의 슬픔에 언어를 주는 데 시가 톡톡한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단단히 붙드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2021년 2월 28일,

 박정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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