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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an 25. 2021

연초에는 식물 이야기

봄을 기다리는 마음

다시 태어난다면… 은행나무로 태어나고 싶어요. 
활기찬 잎사귀로 가득한 여름을 보내고 서서히 가을을 받아들이면서
열매를 성숙하게 하고 낮의 시간이 줄어드는 걸 보면서
열매가 떨어질 때를 정하죠.

무성했던 무거운 잎을 가벼운 땅으로 돌려보내고 끝인 것만 같은 
겨울을 보낸 뒤에 다시 또 한 해를 살아가는 은빛의 살구.

  ㅡ <식물생활>, 안난초 저




     2021년의 첫 달이 후다닥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의 1월은 어땠을지 궁금해요. 저는 작년 12월과 크게 다르지 않은 1월을 보냈습니다. 너무 거창하지 않게, 하지만 희망을 줄 만한 2021년을 여는 첫 책을 고민하다가, 읽는 내내 저의 마음을 따뜻하게 달궈준 안난초 만화가의 <식물생활>을 들고 왔습니다. (연말연'시'에는 '시'집을 특집을 꼭 하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다음달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식물생활>은 열 명의 식물애호가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총 2권으로 구성된 만화입니다. 1권의 부제는 "그래서 식물이 좋아", 2권은 "우리의 정원을 기다려"입니다. 1월은 어쩐지 잠이 늘어서 책을 읽을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술 넘어가서 금방 다 읽어버렸던 만큼 바쁜 연말연시에 추천하기에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만화는 서로 다른 이유로 식물을 키우게 된 열 명의 인물들이 각자의 속도와 취향과 삶의 리듬에 맞게 식물과 함께 삶을 일구어가는 이야기를 그립니다. 안달루시아 지역의 오렌지 향이 나는 듯, 또 민트를 넣은 모히토를 먹는 듯 오감이 살아나는 생생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 덕에 식물을 매일 지켜보고 살피는 이들의 삶을 상상해보고 동경해보게 되었습니다.




    커다란 동백나무를 잘 키우려고 4월부터 11월까지는 아파트 앞 화단에 두었다가 겨울이 되면 사람 키만 한 나무를 낑낑거리며 엘레베이터에 싣고 들여놓는 삶, 때가 되면 허브밭을 가꿀 수 있기를 기대해보는 삶, 그리고 물을 주고 잎을 다듬으며 마음의 평화를 찾는 그런 구체적인 삶의 모습들을 그림으로, 또 글로 읽으면서요.




    식물은 또한, 우리에게 그와 얽힌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것이 삶에 식물을 들이게 되는 이유가 되고도 하고요. 지영은 2월이면 꼭 꽃시장에서 히아신스 알뿌리 하나를 사오던 아빠를 추억하며 그때의 아빠 마음을 상상해봅니다. 에바는 스무살에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아빠가 방에 놓아준 선인장을 떠올리곤 그리워합니다. 그때는 다정한 말 한 마디 없이 독립 선물로 주어진 것이 가시돋힌 선인장이라는 게 못마땅했지만 말이에요.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식물로 태어난다면 오렌지 나무쯤이 되면 좋겠다" 내지는 "언젠가는 나도 나무처럼 단단해보였으면"과 같은 말이 여러 차례 등장하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다를 늘 동경하고 그리워하는 저는 이런 표현들이 생경하면서도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식물을 애정하고 닮아가는 삶, 얼마나 멋있고 촉촉한지요.




    다시 태어난다면, 그것도 식물로 태어난다면 여러분은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으세요? 저는 단연코 수양버들입니다. 강 주변을 산책하다가 바람에 한들한들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들을 볼 때면, 특히나 강에 닿을락 말락 길게 늘어뜨린 그 여유로움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막 녹아내리고 맙니다. 저의 삶에는 너무나 부족한 그 유연함을 동경하고 또 사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식물생활>을 읽는 것이 저에게 큰 즐거움을 주었기에 안난초 만화가께도 감사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그림체를 보면서 안난초 만화가가 그가 표현했듯 "글과 그림을 함께 작업하는 즐거움과 마감의 괴로움이 혼재된 삶"에 들어선 것이 참 저에게, 또 많은 독자들에게 큰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가 앞으로도 식물과 관련된 더 많은 이야기를 그리고 퍼뜨려주기를 기대합니다.




     여러분의 삶에는 어떤 식물이 함께하고 있는지 혹은 언젠가 식물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식물과 얽힌 어떤 추억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드는지 몹시 궁금합니다. 언제든 답장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21년에는 작은 선인장을 들여 함께하는 삶을 살기로 결심한,

2021년 1월 25일,

박정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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