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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Mar 28. 2021

봄을 맞이하는 즐거움

요즘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 - 6. 봄봄봄을 만끽하기

 봄은 오고야 말 것이다. 밤은 짧아질 것이며 내 생각들도 다시금 밝아지고 가벼워지리라.

 ― <야생의 위로>, 에마 미첼 저





 내게는 한 폭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았던 책, <야생의 위로>를 읽으며 나도 봄을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다. 저자는 말한다, 봄은 절대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나는 겨울이라고 해서 극심한 우울의 상태에 빠져들지는 않지만, 봄이 찾아오는 소리를, 그 신호들을 놓치지 않고 모두 알아채겠노라고 결심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꼭 공원으로 산책을 가지 않더라도 출퇴근길에 늘 눈에 담던 녹색 꽃봉오리가 마침내 터지고 천천히 만개하기에 이르는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갔던 몬태나 주에는 겨울, 그리고 7월(여름이 아닌 것에 주목하시라) 이 두 계절밖에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추운 지역이었다. 처음 비행기에서 내릴 때에도 눈이 가득 쌓여있었는데, 눈이 녹은 캠퍼스를 4월이 넘어서야 볼 수 있을 거라곤 미처 몰랐었다. 그래서 그런지 돌아온 한국에서 맞이하는 사계절은 신비하고도 소중하다. 봄에서 겨울에 이르는 이 주기를 내가 얼마나 더 겪을 수 있을지도 궁금하고, 무엇보다 하나의 계절이 모습을 드러내는 그 순간의 두근거림이 있다.





  나는 봄을 마음껏 누리려고 단단히 준비해왔다. 그래, 춥다 못해 시린 겨울에는 마치 올 것 같지 않지만 봄을 반드시 오고 말테니까. 3월생인 내게 대학 동기로부터 연락이 왔다. 봄기운이 만연해질 때가 생일이구나, 하고. 케이크를 꼭 챙겨먹는 것 외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던 내 생일이 갑자기 조금 낭만적이게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봄에 태어나 목 기운이 강해서 끊임없이 새로 시작하려는 성향이 강하다는 말을 어디선가 주어듣고는(게다가 사실이다) 언제나 열매를 수확하려나 생각했지, 만연한 봄기운과 내 생일을 연결지을 생각은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를 덧붙이자면, 나는 동해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는데, 동해는 내가 살 때만 해도 3월이 되어서야 큰 눈이 한 번은 꼭 내리곤 했을 정도로 추운 때였다.





 향긋한 냉이나물을 먹고(더 억세지기 전에 얼른 먹어야 한다), 쑥을 넣은 된장국을 먹는 것 외에 올해에 특히 빠져든 것이 있는데, 바로 대저토마토다. 상큼한 대저토마토는 완전하게 익고 나면 그 매력이 사라져버려서 얼른 먹어야 한다. 홈쇼핑으로 한 번, 그리고 맛있어서 인터넷으로 한번 더 시켰다. 고민하던 나를 결심하게 만든 결정적인 한 마디는 바로, "지금이 아니면 먹을 수 없다"는 것. 이렇게 계절마다 제철 식재료를 꼭 챙겨먹는 것은 나를 돌보고 지금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온전히 누리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해가 갈수록 느낀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은 부지런함이 필수적 요건이며, 실은 커다란 사치보다도 소소한 일상이 우리에게 더 큰 즐거움을 준다고.





 가을에는 꼭 전어와 밤을 먹고, 봄에는 향긋한 봄나물, 여름에는 살이 통통히 오른 민어, 겨울에는 귤과 고구마를 구비해놓고 챙겨먹는 삶. 몸이 매우 쇠약해질 때도, 기운이 넘쳐날 때도 언제든 가볍게 거닐 수 있는 집 근처 공원에서 산보를 하고, 늘 다가오는 계절의 신호를 알아채는 것은 삶에서 누릴 수 있는 큰 축복 중 하나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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