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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pr 25. 2021

지금까지 없었던 만화, 이것은 음식만화인가 아닌가.

<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작가

의도야 어쨌건 그건 좀 웃긴 말이긴 했다.
왜냐면 엄마가 상상하기로는 딸이 움켜쥘 수 있는 최고의 사회적 지위가 영부인이었음과 동시에…
그건 결혼으로 얻어지는 지위였기 때문.
의사와 결혼한 동창이 롤모델인 세대. 그것 말고는 다른 선례를 보기 힘들었던 세대.
그래서일 것이다. 

  ―<이세린 가이드>, 김정연 작가




 김정연 작가님이 <혼자를 기르는 법>에 이어 새로운 만화를 펴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로 너무너무 읽고 싶었던 <이세린 가이드>를 이제야 읽었다. (실은 좀 됐고 후기를 이제야 쓴다.) 이 만화에 대한 대략의 정보는 팟캐스트 시스터후드에서 작가님이 나오는 편을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아직 읽지 않은 이 만화에 대한 꽤 심도 높은 애정을 지닌 채로 읽기 시작했다.






 이 만화에 대한 글을 쓸 때 꼭 넣고 싶었던 표현이 있다. 

"지금까지 이런 만화는 없었다. 이것은 음식만화인가, 아닌가!"

그렇다, 이 만화는 음식 모형을 만드는 주인공 이세린에 관한 만화이다. 김정연 작가님의 다음 만화는 어떤 소재일지 영 궁금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혼자를 기르는 법"은 내가 느끼기에 굉장히 포괄적인 제목이고, 대부분의 2030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특화된 주제로, 그것도 음식 모형에 대한 만화에서 김정연 작가님 특유의 매력, 바로 정보 전달과 유머감각을 뒤섞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잘 살아난 것 같아서 반가웠다.  





 <이세린 가이드>는 진한 진달래꽃 색깔에 금빛 글씨로 "이세린 가이드"라고 꽤나 진지하게 새겨져있다. 단단하고 만듦새가 좋아서 소장하기 딱 좋다. 재밌는 점은 목차가 아닌 차림표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음식 모형 제작자인 이세린이 1화 캘리포니아롤부터 15화 주말 전골까지 음식 또는 음식 모형을 만들며 전개되는 이야기이다. 프리랜서인 이세린이 음식 모형을 작업하는 방식이나 클라이언트와 의사소통하는 방식, 음식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 등등. 음식 모형을 만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건 당연한 건데, 그걸 알게 된 것도 처음, 이렇게 세세하게 그 작업 방식을 알게 된 것도 처음이라 난 그저 신기하고 재밌었다. 





 이건 팟캐스트를 듣다가 알게 된 건데, 심심하면 이런 모형 만드는 영상을 찾아보는 사람(작가님)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영상이랑 별로 친하지 않기도 하거니와, 나라면 심심해서 눈이 핑핑 돌아갈 지경이 되어도 물구나무를 섰으면 섰지 모형 만드는 법은 안 볼 것 같았기 때문. 그래서 내게 이 만화가 더 흥미로웠던 것도 같다. 월급쟁이인 내게는 이세린이라는 인물이 먹고 사는 방식을 보는 것도 꽤 재밌었고. 아직도 기억에 남고 재밌었던 게, 이세린이 완벽하게 잘 만들어진 동파육 모형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다.





위에 두 오빠를 둔 나는 줄곧 고명딸이란 이야기를 들으며 컸다.
"그럴 때마다 두 오빠는 메인이고 난 장식을 맡아 태어난 기분이라 싫었어.
어른들은 셋 중에 내가 돈을 제일 잘 벌게 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겠지. 하하.
결국엔 떡이 고명인 파달걀국이었다 이거야!"





 이세린은 이런 인물이다. 과거를 회상하면서도 온전히 이입해있지 않고, 지금의 현실에 자기 두 발로 단단히 지면을 딛고 선 사람. 반면에 그때 그 시절 일을 반추하고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예전보다 더 잘 이해해가는 사람. <혼자를 기르는 법>에서도 그랬지만, 주인공이 적당히 건조하고 유머로 상황과 인물 간의 긴장을 탁, 푸는 방식이 좋았다. 두 주인공 간에 차이가 있다면, 세린이가 본인의 커리어에 아주 진지하다는 점이 있을까. 





"헉,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젓가락을 최대한 멀리 잡다보니."
"대단하다 야."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젓가락질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돼버렸네."




 내가 <혼자를 기르는 법>을 읽을 때는, 몸 상태가 꽤나 안 좋은 편이었는데도 뒷장이 궁금해서 계속 만화를 넘기고, 심지어는 한참을 웃기까지 했다. 내가 김정연 작가님의 유머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불편함 없이 시원하게 웃는 게 얼마만인지 이번에 다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이토록 오래 다음 만화를 기다렸구나, 나오자 마자 바로 읽고 싶어서 안달을 했구나, 하고. 





 김정연 작가님의 만화는 이런 저런 정보(이번 만화에서는 특히 음식과 음식 만드는 방법)가 녹여있어서 좋다. 활자가 적당히 많아서 활자만큼이나 그림도 읽고 싶을 때 손이 간다고 할까. 다음 작품도 몹시 기다려지는 건, 시다에서 세린이로 이어지는 주인공의 계보가 마음에 든 탓도 있다. 혼자를 기르는 법을 배우던 직장인에서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 다음 만화에는 어떤 주인공이 등장할지, 어떤 새로운 소재를 다루게 될지 궁금하다.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그런 소재였으면. 지금의 세린이보다 더 단단해진 누군가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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