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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7. 2020

위로가 필요한 밤에 읽기 좋은 책

<밤은 이야기하기 좋은 시간이니까요>, 이도우 저

 얼마전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를 소설로 재미있게 읽으면서 소설 읽는 재미를 다시금 들일 수 있었는데, 그 이도우 작가님께서 산문집을 냈다고 해서 얼른 읽고 싶었다. 그래서 도서관에 희망도서 신청을 차마 못하고, 집 앞 3분 거리의 서점에 달려가서 이 책과 작가님의 소설 <잠옷을 입으렴> 을 같이 사 왔다. 사은품으로 준 어니스트 헤밍웨이 얼굴이 박혀있는 머그잔도 함께 들고오는 길에 꼭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에게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아, 딱 이만큼만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기분.


 이도우 작가님은 처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를 중고책으로 사며 알게 되었다. 그 중고책은, 원래 중고서점은 아니고, 책 대여점이 망하면서 저렴하게 파는 기회에 입소문으로 유명하던 저 책을 업어온 것이었다. 그러다보니 원래 책을 잘 안 사는 내가 작가님의 책은 <사랑스런 별장지기>를 빼고 전부 다 소장하게 된 것이었다.

 <잠옷을 입으렴>을 산 건, 도서관에 있는 책이 하드커버지인데다가 튿어진 페이지들을 테이프로 고정해두어서 빌리더라도 끝까지 읽기에는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았기 때문. 물론 우리 시의 다른 두 도서관을 들려도 되지만, 가벼운 내용의 소설은 아닌 이 책을 꼭 완독하고 싶었기 때문에, 자린고비인 나는 고민 끝에 마음의 결심을 한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위로도 되고, 질투도 났다.

 위로가 된 건, 그의 이야기와 문체보다도 그의 감성 때문이었다. 남들은 다 적당한 피부와 보호가 되는 옷을 잘 껴입고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나만 어딘가 부서지고 모자란 채로 여린 마음의 속살을 다 내놓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요즘 특히나 힘들던 차였는데, 그도 그저 사라지고 싶던 시절, 세상과 멋대로 불화하던 시절이 있었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라서 참 다행이다. 

 질투가 난 건 꾸준히 글을 써온 그 삶의 이력 때문이다. 나도 내 마음의 욕망을 따라 살았으면 어땠을까 부질없는 상상을 자꾸 해보게 된다. 글을 쓰고 싶고, 이야기를 직조하며 그 이야기 속에, 활자 사이에 살고 싶다. 오늘도 도서관에서 책장 사이를 천천히 걸으면서, 나는 아무래도 저 바깥의 세상과는 잘 맞지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아빠가 들려주는 짧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잠이 들던 아이는, 커서는 자꾸만 이야기 안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어하는 미성숙한 어른이 됐다. 어쩌면 사람은 늙기만 할뿐 평생 성숙하지 못하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도우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솔직함 때문이다. 글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이 사람은 글을 허투로 쓰지 않는구나 하고. 한 글자 한 글자 그의 진심이 듬뿍 담겨있구나. 그래서 더 마음을 놓고 읽을 수 있고, 그만큼 내 마음의 구석까지 와닿는다. 나도 가식 없이 글을 읽고 느끼고 표현하게 된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사는 건 마음에 계속 크고 작은 생채기를 남기는 일 같다고 생각하게 된다. (얼마전 읽은 정세랑 작가의 <덧니가 보고싶어>에서 인생이 악몽같다는 구절이 참 좋았다. 정세랑 작가님은 통통 튀는 발랄한 에너지 사이에 직구를 숨겨둔다.) 산문집을 읽는 내내, 이렇게 따뜻한 사람도 있구나, 인생이 참 내 맘 같지 않은데, 이 사람은 내 마음의 결과 참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사이사이 있는 나뭇잎 소설도 좋았고, 내가 몰랐던 소설 속 뒷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잠옷을 입으렴>은 아직 안 읽었는데, 관련하여 뒷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꼭지는 얼른 안 읽고 넘겨버렸다. 좋은 구절은 아껴서 읽어야지, 처음 조우했을 때의 그 느낌과 감정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기억에 남는 건 은섭의 말이었다. 너에게는 그 말 그대로라는 말. 책을 읽을 때는 크게 생각하지 않고 넘겼었는데, 그런 의미를 두었다니. 요즘 직장 상사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는 와중에 특히 이런 글이 반가웠다. 나는 솔직하게 내 마음을 비추어 보여주고, 서로 인간적인 유대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순전한 나의 오해였다는 생각이 들어 괴로운 와중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저, 내 말을 있는 그대로 듣고 믿어줄 사람.

 손끝이 느리다는 작가님의 다음 소설이 기다려진다. 사실 나는 로맨스를 좋아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그냥 사랑이야기지 뭐, 싶은 시니컬한 태도를 보이고 싶은 걸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그만의 로맨스 소설을 내는 작가님이 좋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 세상이 조금은 더 살만하고, 따뜻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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