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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7. 2020

활자를 읽어내릴 힘이 없을 때 읽는 책

<그림과 그림자>, 김혜리 저


마음이 무너져내릴 때는 긴 활자를 읽어내릴 힘이 없다. 지쳐서 음악 소리도 소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그럴 때 누군가의 취향으로 선별된 한 장의 그림이 위로가 된다는 걸 이 책을 통해서 알았다.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예요?"

라고 물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아직 없다. 언젠가 생기더라도 외국 작가를 가장 좋아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아.

한국이 여러모로 살기 편리한 곳이더라도 살기 좋은 곳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내가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이유 중 가장 강력한 이유(또는 핑계)는 한국의 정서로 한국어가 모국어인 사람이 쓴 한국어로 된 책이다. 언어의 중요함과 사용법을 잘 아는 사람 곁에 있을 때 마음이 조금 느슨해진다. 긴장을 풀어도 되겠구나 하고.

그 언어를 지금까지 내가 본 사람 중 가장 부드럽고 적확하게 구사하는 사람이 그림 산문집을 냈다는 걸 알고, 반드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해왔다.

읽는 내내, 포근하게 감싸안아주는 기분. 그가 고른 그림도 그를, 그리고 그의 언어를 닮았다.

그 그림의 세계에는 조금도 모가 나있지 않아서, 그저 안전하게 쉴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바깥이 온도가 2도쯤 낮게 느껴지는 사람, 그래서 밖으로 나갈 때마다 심호흡을 한 번하고, 때때로는 무감한 사람인 척 무장을 해야하는 사람.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서 조금 열이 오른 마음보다 더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

이들에게 이 책을 쥐여주고 싶다. 내가 근래에 읽은 것 중 가장 사랑스러운 책을.


#책추천 #독서일기 #감상문 #김혜리 #그림과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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