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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2. 2021

마음을 비우고 싶어서 그림을 찾았어


어제는 성북동에 있는 전시회 두 개를 다녀왔다. 오후에는 잠실에 다른 일정이 있어서 동선이 모조리 꼬여버릴 게 분명한데도, 오늘 반드시 가야한다는 이 이상한 충동을 물리칠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극단적으로 효율성을 추구하는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이렇게 내 마음이 유난히 내게 말을 소리칠 때가 있다. 지금 내게는, 반드시 이것이 필요하다고. 그럴 때는 나는 마음의 손을 가만히 들어준다. 내 이성은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먼저 간 전시회는 김승영 작가의 <땅의 소리>, 그 다음은 김보희 작가의 <Towards>였다. 요즘 나는 번아웃 상태에 있는데, 이 스트레스의 상당 부분은 인간 관계로 인해서 보기 싫은 나의 모습을 자꾸만 보게 된다는 데 있었다. 그저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었다. 시간과 에너지의 한계가 없다면 직접 자연 속으로 날아들어가 며칠 푹 고독을 즐기다 오면 좋겠건만, 자연과 교감하고 깊은 고민과 구상 끝에 탄생한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성에 찼다.



두 전시회는 각각 다른 매력이 있었다. 먼저 김승영 작가의 <땅의 소리>에서는 노란 셀로판지를 덧댄 창, 불빛이 일렁이고 흙으로 그릇이 빚어지는 영상물 앞에 물이 뚝뚝 떨어지는 설치 작품, 그리고 인적이 끊어진지 오래된 자연에 햇빛이 들어오고, 새가 파닥파닥 날아다니는 장면을 찍은 영상물 등이 있었다. 가만가만 바라보면서 너무나 긴장하고 있었던 내면의 힘을 좀 풀었다. 자연, 스스로 그러함처럼 나도 살고 싶다고 희망하면서.



재미있었던 건 종이에 마구 끄적이고 쓰레기통에, 또는 바닥에 휙 버릴 수 있는 체험 전시였는데, 요즘 내 마음을 혼잡스럽게 만드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편지를 길게 쓴 뒤 구겨서 버렸다. 이런 것의 효과를 그다지 신봉하지 않았는데(앞에서 말하지 않았는가? 난 극단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는 실리적인 인간이다), 신기하게도 마음이 훨씬 가뿐해졌다. 그 외에 스님이 빗질하는 모습을 담아낸 작품 <쓸다>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쓱싹쓱싹 깨끗하게 정리되는 기분, 불필요한 것들을 쓸어내는 기분이 들었다.



김보희 전은 마음이 선명해지도록 멋진 자연을 그만의 시야로 잡아 작품으로 빚어냈다. 마음이 그저 깨끗해지는 기분. 유난히 좋았던 건 노을빛 바다와 모래사장과 바다가 하얗고 연하게 그려진 작품이었다. 이상하게 마음을 끄는 작품들을 몇 발견했다. 이런 이끌림은 이성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내 안의 무언가, 말하자면 영혼 같은 것과 공명하는 그런 작품들이었을 것이다.



전시회를 가면 화풍에 대하여, 재료에 대하여 서로 의견을 주고받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전시회를 좋아하고 꼭 정기적으로 가긴 하지만 그림에는 여전히 문외한인 나는 영 부럽기도, 멋있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은근히 귀 기울이다가, 역시 나는 내 멋대로 내 방식대로 그림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서 그 안에서 사는 나를 상상하고, 아니면 작가가 이 그림을 조금씩 완성해가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그는 눈에 비친 풍경으로부터 무엇을 담아내고 싶었을지, 어떤 환희와 격정, 또는 인내와 절망 끝에 이 그림이 나왔을지 생각하면서.



 사람마다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은 각기 다르겠고, 내게도 내게 맞는 방식이 있는 것인데도, 그림 앞에서 한없이 멈춰 선 사람을 보면 이 작품으로부터 그는 무엇을 보았는지, 이 작품이 그에게 나와는 다른 방식으로 말을 거는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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