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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3. 2021

당신의 부끄러운 마음이 좋아요


직장생활을 시작한 후로 내가 스스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를테면, 사람을 아주 많이 미워할 수도 있는 사람이고, 허술한 데가 많을 뿐더러(나는 내가 굉장히 철두철미한 사람인 줄 알았다), 무엇보다 직장생활이 안 맞는 사람이었다. 혼자 있을 때 나는 평화롭고 외롭지도 않고 매우 안정적인 사람인데, 관계에는 서툴어서 늘 부끄러울 일이 생긴다.



부끄러움에도 여러 층위가 있지만, 내가 주로 느끼는 것은 내 존재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이렇게밖에 하지 못하는 나, 지우고 싶은 과거의 잘못, 세련되지 못해서 느끼는 수치심 등등. 내 선택과 행동에 대한 후회가 내 존재 가치에까지 회의를 품게 만드는 농도 짙은 부끄러움.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관계 속에서 살아야 한다지만, 타인은 필연적으로 상처와 함께 온다. 상처를 서로 주고 받으며 배운 것이 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이 가장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 자신의 행동을 반추해보고, 잘잘못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며 나를 미워하기도, 혼내기도 하는 것이 과거와 다른 나를 만든다.



실은 굉장히 뻣뻣한 유형의 인간을 상사로 만나면서 이 교훈을 배웠다. 부하 직원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이며 

폭언을 서슴치 않던 사람. 그는 업무에서든 인간 관계에서든 자기의 잘못된 점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가진 많은 미덕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거로부터 조금도 배울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를 인생에서 만나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귀중한 능력이며, 힘이라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업무에 철저하고 열정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가장 존경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실은 어떤 귀중한 일보다 사람이 더 귀하다는 것을 배웠다.



살아갈수록 유연한 태도가 인생에서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이고, 그래서 당연히 잘못도 실수도 어쩌다 훌륭한 일도 하기 마련인 인간일 뿐이며, 이 모든 것은 살아가는 과정이라고. 오늘도, 내일도 부끄러운 나날들은 이어질테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 멋진 사람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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