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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5. 2021

운세보는 마음


이런 가정을 좀처럼 싫어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두 분류로 나눈다면, 나는 운세를 보는 사람과 안 보는 사람으로 나누고 싶다. 나는 운세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 보는 편이다. 재미도 있고, 어느 정도 믿기도 하고, 그러나 무엇보다도 간절히 바라는 내일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가까운 미래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잠깐이라도 엿보고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싶다. 실은, 얼마 전에 운명 상담소라는 전시회를 다녀왔다. 운명, 그리고 상담이라니. 더운 주말, 내가 좋아하는 두 글자의 만남이 나를 위한 것처럼 보여서 망설이지 않고 들어갔다.



1층과 2층으로 구성된 전시회는 체험형 위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그래서 꽤나 재밌었다. 일단 1층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갑자기 나타난 풀들에 조금 당황하게 된다. 한발 한발 내딛으면 더 깜짝 놀랄 만한 조형물이 있는데, 누워있는 커다란 사람의 얼굴 모양이다. 큰 귀에 입을 대고 말을 걸면, 꽤나 성의 있고 말이 되는 답변을 해준다. 나와 비슷한 시간대에 들어간 다른 사람은 너는 꿈이 뭐니, 같은 걸 묻던데, 나는 배는 안 고프니, 먹고 싶은 건 없니 같은 걸 묻고 있었다. 그 똑똑한 인공지능은, 자신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으며, 먹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아도 연구 중이라고 했다.



그외에도 캄캄한 방에서 5분 정도 잠자코 앉아있어야 감상할 수 있는 빛의 형상이라든가, 달을 불러내는 초환 의식 등 꽤나 재미있는 작품들이 있었다. 어쩐지 몽환적이고 신비한 느낌이 들어 오랜 시간을 들여 감상했다. 그다음에는, 내 운명을 알아볼 수 있는 상담소가 있는 2층으로 향했다.



2층에서는 타로점도 봤고, 그밖에 심심풀이로만 여겨야 하는 이런 저런 점들을 더 봤다. 재미있었지만, 순전히 재미로만 여겨야 하는 것들. 나는 요즘 크게 고민 중인 것에 대해서 타로를 봤는데, 내가 기대했던 답변이 전혀 아니었으며, 그 이유 중 일부는 내가 모든 내용을 털어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서 의사소통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가 말하지 않은 다른 많은 이유 때문에 어떠한 결론을 내리고 일부의 이야기만 전달하면, 상대방은 내 결론을 의심한다. 그러나 나는 나의 시간, 에너지, 무엇보다도 언어로 전달할 수 없는 진실, 말하기 어려운 사생활, 차마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는 낯부끄러움 등의 이유로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없으며, 따라서 때때로 소통은 둘 사이의 전적인 신뢰가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결국 운세를 보는 건, 당신의 미래가 당신이 원하는 대로 술술 풀릴 것, 미래에는 당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행복이 확실하게 예정되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듣고 싶기 때문이다. 원하는 답변을 들을 때까지 계속 볼 거면서, 재미로 본답시고 마음에 안 드는 말을 듣게 되면 계속 불안하고 찜찜할 거면서. 그래, 역시 점은 보는 게 아니라는 결론만 얻은 하루였다.



나는 종교인들은 최종적으로 신이 모든 것을 주관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으므로 인생에 있어 일부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는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어떤 종교인이 쓴, 모든 이들은 자기 운명의 개척자라는 말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결국 내 미래는 내가 빚는다. 나의 생각으로, 확신으로, 내가 내뱉는 말로. 그런데 왜 오늘도 나는 운세를 보는가. 정신 못 차리고 간절히 바라는 네가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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