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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n 17. 2020

트라우마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이란

넷플릭스 오리지널  <리버> 감상

 할아버지 형사에 관한 드라마라니, 평소라면 절대 보지 않을 작품이지만 트위터 타임라인에 자꾸 추천글이 보여서 보기 시작했다.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비밀의 숲> 느낌도 난다고 했으니. 당연히 봐야겠다 싶어 중간중간 지루한 부분도 공부하듯 감내하면서 봤다.


보는 내내 이 주인공이 나랑 너무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보지 않는 것을 보느라, 그리고 어린시절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느라 현재를 살지도,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일구거나 관계를 구축하지도, 목숨보다 강한 감정을 표현하지도 못한 채 사는. 그래서 그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환영이 너의 그 비참한 삶은 네 자신이 만든 거라고 말했을 때 조금 내상을 입었다.


예전에는 틀린 게 없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왜 화를 내고 상처를 받는지 이해를 못했는데, 이제는 알겠다. 차라리 틀린 말이면 덜 영향받을 것을, 그 말에 담긴 것이 일말의 진실일지라도 우리 내면의 불안함을 건드리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것이다.


이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에게 다른 여성들이 매력을 느끼고 접근하는 설정이나, 나이가 한참 어린 여자를 상대로 이끌리는 것 등등 기분 나쁠 소지는 많았다. 그를 애정하고 보호하려는 여성들이 왜이렇게 많은지, 이게 과연 현실성이 있는가, 미디어에 이런 내용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것이 무엇을 위해 좋은 일인지 회의가 들었으나, 어쨌든 그런 장면이 나올 쯤에는 이미 이 작품의 매력과 더불어 주인공과 나와의 성격적 유사성, 특히 스티비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에 그냥 참고 보기로 했다. 다음부터는 최대한 여성 감독이 찍고 여성이 리드하는 작품을 보는 것으로.


실은 이 작품의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다면, 환영과 실재하는 인물을 구분할 수 있다고 분명히 말했던 주인공이 굳이 다른 사람들이 다 있는 앞에서 환영에게 대화하는 것을 넘어서서 폭력을 휘두르고, 소리지르는 등 본인의 정신적 건강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휘둘리고, 또 본인을 휘두르게 만드는가에 대해서 의문의 여지가 있으나.. 어쩌면 현실을 온전히 살지 못하고 본인이 만든 세계에 완전히 갇혀있는 사람을 묘사하고

싶었을 수 있다고 호의적으로 해석을 해 본다.


가장 좋았던 것은 새로 붙게 된 파트너와, 그의 아내와 리버의 관계 설정이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도 응급실에 아내가 뛰어와서, 당신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데, 이렇게 혼자 다치게 내버려두냐고! 나에게 이 사람은 정말 소중한 사람이라고, 그걸 기억해달라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음에 꼭 저녁 먹으러 오라는 초대까지.

그 장면을 보면서는 아니, 리버가 사지로 굳이 몰아넣은 게 아니고 업무시간 외에 본인의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게 비난할 거리는 아니라고 생각하며 분개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그의 말이 뭐하나 틀린 것 없다. 아주 합리적인 분노이자 비난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 작품을 누군가에게 추천하고 싶냐고 묻는다면? 6부작이고 의심의 여지가 없이 잘 만든 작품이므로, 넷플릭스에 다른 볼 만한 작품이 없다면, 혹은 트라우마로 인해 Intimacy Problem이 있는 사람, 혹은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지속적으로 느끼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최근에는 <죄인>을 시작했는데, 이것도 추천을 꽤 많이 받았기 때문에 보려는 것이지만 완주할 수 있을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다 보게 된다면 꼭 후기를 써야지. 기록을 남겨야지.


나는 책을 읽거나 영화, 드라마 등을 본 후에는 '소화시키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본지 꽤 된 드라마의 후기를 이제야 적는 것을 이렇게 합리화해본다.




#넷플릭스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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