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정은 Jun 18. 2020

착한 여자아이로서의 우리

넷플릭스 <미스 아메리카나> 감상


1. Nice Girl

 박수와 찬양을 통해서 기쁨을 얻도록 자란 어린 소녀가 자기 두 발로 서기까지 얼마나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쳤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난 연예인이 어떤 직업이고, 어떤 심정으로 무대에 오르는지 전혀 몰랐는데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왜 그들이 자주 아프고 힘이 부치는지 알 것만 같다.

 나는 엄청 폐쇄적이고 작은 기독교 사회에서 자랐는데, 게다가 아빠는 바로 옆학교 선생님이어서 항상 나의 학교 선생님들과도 잘 알았다. 아빠의 딸로서 어떻게든 나는 눈에 안 띄고 싶고, 입에 오르기 싫어서(이미 충분히 많이 이야기되고 있었으므로) 나를 아주 작은 상자 속에 구겨넣어서 그 틈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면서 자랐다. Celebrity는 아니지만, 이런저런 일들이 아직도 나에게 강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하나의 트라우마로서 작용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

 나이스 걸은 이런이런 행동을 하고, 또 저런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규율은 실체적인 코르셋처럼 사람을 옥죄고 만다는 걸 온 몸으로 겪으면서 자란 사람으로서 그를 더욱 존경하게 된다.

 한편으로 종교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일정 규율이 인간의 삶을 어느 정도의 궤도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은 알겠으나, 종교를 무기로 타인을 공격하려는 의욕에 불타는 사람들을 볼 때 종교에 대한 회의에 빠지게 된다. 사람을 보고 종교를 판단하는 건 할 짓이 못되지만. 애초에 이 모든 것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되묻고싶어지는 것이다.



2. 인터넷 공간, 그리고 대중

 지난 대선 때 미국 연예계까지 한참 들썩였던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나는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한 이미지가 썩 좋지 않았는데, 정치에 대한 어떤 의견도 표명하지 않은 것이 그가 보수층일 지지한다는 둥, 트럼프를 지지할 거라는 확신에 찬 몇 인터넷 반응을 보고 아, 그런가 싶었기 때문에. 아, 그런가라니! 정규 교육을 받은 성인이 할 만한 판단이 아니다.

 인터넷 공간이 이렇게나 유해하다. 내가 직접 본 것도, 그를 겪어본 것도 아니면서 댓글을 보고 쉽게 판단해버리다니. 스스로가 엄청 부끄러웠으므로 이렇게 똑똑히 기록을 남겨 반성한다. 내가 잘 모르는 사안에 대해서는 댓글을 통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하는지, 기사 원문에 실리지 않은 이면의 내용은 무엇이 있을지 보는 게 습관인데, 이제부터 그러지 않을 것!  

 엄마가 암 진단을 받고 테일러 스위프트가 한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끊임없이 꽉 붙들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한 번에 하나만 담을 수 있고, 그 대상은 우리가 직접 선택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설계할 수 있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내 소중한 마음을 쓰지 말자. 이를테면 과거에 대한 후회, 나에게 못된 일을 한 사람들에 대한 회상, 나의 실수와 잘못, 미래에 대한 생산성 없는 불안.



3. 나를 보호하는 것에 대하여

 테일러 스위프트가 자기 가치관을 소리내어 말하고 정치에 대한 의견을 대중에게 제시하기 시작할 때 벌어진 열띤 설전이 날 불안하게 했다. 당시 그가 겪고 있을 불안함과 분노, 취약함이 너무 와닿았기 때문이고, 모든 것보다 그의 안전을 염려하는 가족의 마음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그리고 가족과 친구를 보호하기 위하여 스스로 많은 규율을 설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스스로를 자유를 잃어버리고 만다. 의견을 표현하고, 잠재적 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좀 더 자기다울 수 있는 기회를 내려놓게 되는 것이다.

 실은 보호라는 이름으로 두려움을 놓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도 직장에서, 또는 바깥에서 지금 일어나는 이 상황, 나에게 던져진 저 발화가 정말 아니라고 생각할 때, (이건 성희롱이에요. 그런 말씀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상대와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여 꾹 속으로 눌러담고 마는데, 그러면서 나의 자존감은 손상된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까지나 현실 세계에서 살아야 하므로, 적정선을 지키며 나를 보호하고, 나를 드러내는 것 사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조직의 일원으로서 처신을 하는 것이 나를 더 다치게하지 않기를 바란다.



4. 우리의 몸에 대하여

여성으로서 우리는 쉽게 평가당하고, 저울질당한다. 끔찍한 것은 마치 적선하듯, 칭찬하듯 본인이 매긴 점수표를 건넬 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예쁠 필요가 없고, 세상에 그런 의무를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나는 마네킹도 인형도 아니고, 제 기능을 온전히 하는 하나의 인격체이므로 다른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줄 필요는 없다고.

길게 일한 것도 아닌데 그동안 직장에서 들었던 외모평가만 해도 한 바닥이다. 가볍게는 살 뺄 생각 없냐고, 살 빼라는 말. 이 정도는 이제 그냥 웃으면서 넘긴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건, 그 뒤에 아, 성희롱인가? 신고해! 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때는 진짜, 진짜 화가 많이 났다.  

 나는 운동을 좋아해서 꾸준히 하는데, 굳이 물어보기 때문에 (내 사생활인데도) 그런 운동을 하는 네가 상상이 안 간단다. 아니, 그걸 왜 상상하지?! 내가 생각이 꼬인 것 같기도 하지만, 이런 말을 하는 남자 직원들을 여러 차례 겪어니 염증이 난다. 나의 몸을 보기 즐거운 것으로 소비하고자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은 정말 들을 때마다 괴롭다. 더 끔찍한 것은 그들의 눈으로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을 때다.

 나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섭식장애가 있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 못 했고, 현재 본인의 기준과 즐거움을 되찾았다니 그저 존경스럽고 나 역시 기쁠 뿐이다. 나도, 언젠가 그처럼 나의 기준을 찾고 내 몸을 더욱 존경할 수 있게 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트라우마가 우리에게 남긴 흔적이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