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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04. 2021

<루카>, 사랑을 말하는 애니메이션


여름날의 이탈리아 해변 마을 풍경에 눈이 황홀해지고 마음 속까지 시원해지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루카>를 보고 왔다. <루카>는 육지로 나오면 인간 소년으로 변하는 물고기 루카와 알베르토의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바다와 육지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친구 알베르토를 알게 된 루카는 부모님의 말을 거역하고 처음으로 바다 밖의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이걸 알고 매우 분노한 엄마가 심해로 보내버린다고 위협하자 가출을 하고 아예 알베르토와 인간 마을로 숨어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루카>는 소수자, 더 구체적으로는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를 비유적으로 드러낸다. 자신과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오해하고 사냥하려는 마을 사람들 속에서 루카와 알베르토는 위기의 순간들을 여러 차례 넘긴다. 정체가 드러날 경우 신변이 위협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정체성을 숨기기 위한 거짓말이 그들의 일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바다 괴물 사냥꾼인 줄리아의 아버지가, 물고기로 변해서 공격을 받기 일보 직전인 소년들을 "루카와 알베르토"라고 명명해서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그는 이미 그들을 알았고, 친구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설령 자신이 그토록 쫓던 바다 괴물이란 걸 알았음에도 그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때 비로소 다른 마을 사람인 것처럼 위장하고 있던 할머니 두 사람도 빗속으로 나와 물고기인 정체성을 밝힌다. 이후 물고기들은 비를 피하지 않고 물고기로서 식사를 하고, 거리를 다닐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물고기로 변해버린 친구 알베르토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기꺼이 빗속으로 함께 뛰어든 루카의 용기 덕분이었다.




<루카>는 수면 위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준 우정에 대한 영화이면서, 동시에 물 속에서 육지로, 섬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더 큰 도시로 뻗어나가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이 모든 것―사랑, 용기, 자유, 우정―은 연결되는 것 같다. 하나를 떼어놓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동시에 <루카>는 흔하게 빠질 수 있는 사랑의 덫, 즉 질투와 통제, 그리고 폭력로 번질 수 있는 위험을 아슬아슬하게 피해간다. 루카의 안전을 위해서, 너는 내가 잘 알기 때문에 어디어디 있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읍박지르다 못해 루카의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심해로 유배보내려고 하다가, 집을 나간아들을 찾겠답시고 온 마을의 인간 소년소녀들을 다 물에 적시는 부모님이나, 친구 줄리아와 친해지면서 더 넓은 세상을 조금씩 배우고 품기 시작하는 루카를 견제하는 알베르토를 보면서 불안하고 답답했다. 




다행히 영리하고 선한 이들이기에, 그리고 총명한 루카가 끝없이 문을 두드림으로써 자신의 잠재력을 펼쳐갔기에 영화는 해피엔딩을 향해 나아간다. 루카의 부모님과 알베르토가 루카를 보내주는 것이 그를 사랑하는 방법임을 납득하고 행동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꼭 <주토피아>의 오프닝 부분과 같은 엔딩이 마음에 들었다.




코로나19로 예전 같은 여름 휴가를 즐기지도 못한, 지친 이들에게 선물 같은 영화이다. 루카와 알베르토가 처음으로 북적이는 인간 마을을 봤을 때의 충격이, 꼭 <콰이어트 플레이스 2>에서 괴물을 피해 섬으로 들어가 예전의 평화로운 그 일상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받은 충격과 내게는 닮은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야 눈물 날만큼 그리운 일상들. 영화를 보는 내내 친구와 갔던 이탈리아 남부 해변 마을이 생각났다. 뛰어난 영상미로 이를 훌륭하게 재현해낸 <루카>가 내게 결코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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