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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10. 2021

다시 본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나


너무나 사랑하는, 흠잡을 데 없는 영화 <오만과 편견>을 다시 보았다. 중학교 2학년, 당시에는 너무나 벗어나고 싶던 강원도 동해에서 책으로 <오만과 편견>을 처음 만나 다아시와 사랑에 빠지고, 대학교 3학년, 미국에서 봄 학기가 끝나고 친구들과 오두방정을 떨면서 보았던 영화 <오만과 편견>,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보았던 콜린 퍼스가 나오는 BBC 드라마 <오만과 편견>까지, 각각 보았던 감상과 그때의 내가 새록새록 기억이 났다.




영화건 책이건 봤던 작품을 또 보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책 <오만과 편견>은 아무리 사랑하더라도 다시 읽지는않는데, 영화 <오만과 편견>은 그 특유의 분위기, 마음이 차분해지는 스코어와 영상미 등 때문에 다시 보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다아시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멋있고, 어떤 순간에도 굽히지 않는 리지의 곧은 성정이 사랑스러웠다.




내게 다시 보이는 건 첫 만남부터 리지에게 빠져서 오만 티를 다 내는 다아시, 그리고 빙리와 제인의 이야기였다. 나는 언제나 책을 좋아하는 인물들에게 더 이끌린다. 고집 세고, 자기만의 세계가 확고해서 가끔은 사랑스럽지 않은 인물들. 그러나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제인의 차분하고 온화한 성품이 새롭게 마음에 와닿았다. 그가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보다 정확히는 미워하지 못하고) 좋게만 보는 만큼, 온 세상과 사람들이 그에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화답할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빙리와 제인이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로, 서로 닮아있는 만큼 한눈에 이끌렸던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고 언제나 생각했지만, 그와 동시에 친구의 말 한마디에 쉽게 도망쳤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청혼하는 빙리의 행태가 영 못마땅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를 조금 이해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샬롯의 말처럼,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누구나 바보가 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감정의 골이 깊을수록 겁을 집어먹고 달아나버리는 걸 탓할 수는 없으니까.




어쩌면 이 영화는 서로에게 닮은 커플들이 사랑에 빠져 온갖 바보같은 시련을 만들어낸 끝에 결국은 함께하게 되는 이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려서 <오만과 편견>을 읽은 후로 이상형을 물어보면 미스터 다아시같은 사람이라고 답했지만, 다아시는 리지와 영혼까지 닮아있어 잘 어울렸던 것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말이 곧 청혼을 해야하는 분명하고도 단정한 이유가 되었던 시대에 잠시 여행을 다녀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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