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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20. 2021

저녁 노을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


이제는 나도 하늘 보기가 취미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퇴근한 후에 보는 그림같은 저녁 하늘을 보고 있자면, 어제처럼 퇴근길에 불현듯 내가 잘못한 일이 생각나서 괴로운 와중에도 산다는 건 기적같은 일이라는 생각에 조금 감격하게 된다. 이렇게 점점 붉게 물드는 하늘을 보고 있자면 내게 떠오르는 책이 한 권 있다. 바로, <하울의 움직이는 성 2>이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그 명성에 비해서 영국 작가 다이애나 윈 존스가 쓴 원작 소설이 있으며, 총 3권으로 된 연작 중 1권만이 우리가 잘 아는 그 애니메이션의 내용이라는 사실이 잘 알려져있지가 않다. 나는 원작을 훨씬 더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1권만 적어도 100번은 읽었는데, 내가 오늘 소개하고 싶은 건 2권이다.




2권에도 하울과 소피는 등장하지만, 주변인물에 불과하다. 매우 평범한 주인공 압둘라는 상상력만큼은 비범하다. 마법 양탄자를 우연히 손에 얻게 된 그는, 기묘한 방식으로 그의 모든 상상이 현실이 되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를 골탕먹이려는 존재의 계략이긴 했지만, 마법 양탄자가 그를 공주인 밤의꽃에게 데려다주어 사랑에 빠지고, 사막을 홀로 헤매며, 그는 그의 상상이 얼마나 빈약했었는지 비로소 깨닫는다. 현실은 더 황홀하거나 괴로워서 그를 연신 충격에 빠뜨린다.




2권에서 등장한 소피는 여전히 그의 말이 현실이 되는 마법을 쓰며 압둘라와 함께 여러 위기를 헤쳐나간다. 말에는 무서운 힘이 있어 곧 현실이 된다는 건 살아갈수록 알 수밖에 없는 진리이지만, 그 모든 걸 차치하더라도 나는 소피와 닮은 사람임이 분명하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 맏이라 어디 하나 기댈 데 없이 모험을 떠나야하는 운명이라든가, 거칠 것 없이 행동으로 옮기고마는 성미같은 것들.




영리한 밤의꽃을 비롯하여 각국의 납치된 공주들, 상상이 현실이 되고마는 마법같은 일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하늘 위의 성.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나, 분명 위에 성이 자리할 것 같은 넓고 판판한 구름을 보게 되는 저녁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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