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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22. 2021

퇴사를 고민하면서 계속 다니는 마음에 대하여


학창시절에는 본래 별의별 선생님들이 다 있기 마련이다. 중학교 다닐 적 나의 국어 선생님은, 마음 같아서는 사표를 교장샘 이마에 던져버리고 싶은 걸 매번 참는다고 말했다. 묻지도 않은 말을 기어이 해내는 그가 어이도 없었고 이해도 안 되어서 웃어 넘겼는데, 기억에는 선명히 남았다. 그리고 이제야 그저 이해한다. 그도 직장인일 뿐이었다는 걸.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부부들을 보면 답답한 마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자식 앞 길을 막을까봐, 라는 촌스러운 이유가 한 몫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고, 경제적으로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인간적으로 형편없는 인간인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이혼하지 않는 게 내 상식 밖의 일이라, 난 늘 분노를 터뜨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네가 생각하는 것 만큼 불행하지는 않다, 그들 나름의 행복이 있다, 이혼이 쉬운 게 아니다 등등 이야기를 했으나 나는 납득을 못했는데 어느날 엄마가 넌지시 이야기했다. 네가 회사 그만두고 싶다고 그러면서 못 그만두는 거랑 똑같아. 나는 단숨에 이해했다. 그렇구나, 그런 마음이겠구나.




당시에 그렇게 힘들면서도 오랫동안 퇴사를 고민만 했던 건, 내게 확신이 없어서였다. 형편없는 취급을 받으며 나의 무가치함을 뻐져리게 느끼는 와중에, 날 위한 중대한 결단을 내릴 만큼의 내 능력치에 대한 자신감과 판단력, 그리고 무엇보다 내 결정에 대한 믿음이 없는 상태에서 퇴사를 할 수가 없었다. 가스라이팅을 지속적으로 당해서 몸과 마음 모두 피폐해진 상태였으며, 고작 스물 다섯있던 만큼 그 회사는 내 세계의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내 세계의 전부에서 별볼일 없는 패배자였다.




이전 직장과 지금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고 싶은 이유는 판이하게 다르다. 실은,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꽤나 사정이 좋아진 편이다. 그때는 이렇게 사는 건 죽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 싶어서 결단을 내린 거였고, 1/3은 울면서 다녔는데, 지금은 두세달 달에 한 번 꼴로만 운다. 물론 슬픔이 북받쳐서는 아니고 화가 너무 쌓이고 쌓여서 눈물이 나는 것이지만. 내게 소리지르며 막말을 일삼는 사람도, 정시퇴근에 눈치주는 사람도―본인들 담배피우러 한참 자리 비우는 동안 쉬지 않고 일하는 나를 알면서도― 없다.




그러나, 직장인은 언제나 가슴에 사표를 품고 다니는 법. 이제는 마음 편하게 정시퇴근도 하고, 대부분의 직장 선배들에게 닮고 싶은 부분을 발견하여 겸허한 마음으로 다니는 중인데도, 그리고 무엇보다 전 직장에서 다친 마음이 상당부분 치유되어 인간답게 살아가는 중인데도, 나는 또 다른 내일을 꿈꾼다. 더 내게 맞는 자리에서, 더 나와 맞는 일을 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고.




그런데 나는 가랑비에 옷 젖듯 지금 이곳과 이곳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졌고, 다른 직장은 또 하나의 미지의 세계가 될 것이므로, 그리고 또 다른 곳에 가서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게 이제는 너무 벅차게 느껴져서 오늘도 어제와 같은 직장으로 출근을 한다. 다시 자기소개서 쓰고 정장을 입고 1차, 2차 면접을 보는 것? 내게는 턱걸이만큼이나 멀게만 느껴지는 일이다. 강제가 아니면 굳이 엄두를 내지 않을 일.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는 내가 다니고 싶은 직장에 대해서 생각한다. 일단, 사기업은 이제는 못 들어갈 것 같다. 내게는 물건을 많이 파는 것, 회사의 몸집을 불리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었다. 지금은 표면적으로나마 사회에 꼭 필요한 서비서를 제공하는 직장이라 그런지, 충분히 동기부여가 된다. 내가 뭘 하고 있나 자괴감에 빠질 염려는 없다. 프리랜서도 어렵다. 잠깐이나마 해봤는데, 소속감이 없고 불안정해서 내게는 맞지 않았어. 지금 직장과 같이 정년 보장은 되어야 하고, 나는 퇴근하면 더 바쁠테니 정시퇴근은 해야 하고, 일이 엄청 힘들면 안 되는데. 나이가 드니 조건은 까다로워지고 몸은 무거워서 잘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예전만큼 간절하지가 않아서.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뻔히 보여서 그렇다.




아무래도 일단은 stay. 출근 준비나 마저 해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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